눈을 크게 뜨고 기획재정부가 16일 내놓은 ‘2016년 경제정책방향’을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지만 올해 실질성장률 전망치는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첫 페이지 ‘2015년 경제운영 평가’는 생뚱맞게 올 3분기(7∼9월) 성장률로 시작됐다. “적극적 정책대응에 힘입어 3분기 1.3% 성장하며 5분기 연속 0%대 저성장의 흐름을 끊고 5년 만에 가장 빠른 회복세”란 자화자찬도 곁들였다. 그 다음 줄에는 “올해 경상성장률은 4년 만에 5% 내외로 예상되며 3대 신용평가사 모두 역대 최고 등급 달성”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여기까지 읽고 “아, 정부가 약속했던 3%대 마지노선은 지켜냈구나” 하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대외 부문이 과거와 같이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면 올해 3%대 후반 성장도 가능했다”는 말로 설명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가 공언한 3%대 성장률을 달성했다는 건지, 그러지 못했다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궁금증은 경제정책방향 보고서의 끝자락인 40페이지에 와서야 풀렸다. 올해와 내년도 경제지표를 비교해 정리해 놓은 표 한구석에서 올해 실질성장률 전망치가 2.7%라는 대목을 발견했다. 총 49페이지에 이르는 보고서에 올해 실질성장률 최종 전망치가 언급된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1년 전인 지난해 12월 22일 정부는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으면서 3.8% 성장을 공언했다. 세계 경제 회복으로 수출이 증가하고 유가 하락, 재정지출 확대, 투자 촉진 등 정책 효과로 내수가 개선될 것이란 근거도 제시했다. 이후 정부는 공식 전망치를 ‘3.8%→3.5%→3.3%→3.1%→2.7%’로 4차례나 수정했다.
기재부 관료들에게 왜 이렇게 전망치를 자주 바꾸느냐고 물었더니 “말 그대로 전망이지 않느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전망은 틀리라고 있는 것”이라며 우스갯소리를 건네기도 했다. 관료들이 이같이 반응하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세계 경제가 나빠져서’ ‘수출이 부진해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터져서’ 등 다양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많았다.
하지만 뒷맛이 쓰다. 실질성장률의 최초 예상과 최종 결과의 차이는 1.1%포인트나 됐다. 정부의 전망 능력을 점수로 매기면 낙제를 면하기 어렵다. 나라 가계부인 예산은 정부의 전망치를 근거로 꾸려진다. 전망치가 0.1%포인트만 틀려도 수천억 원의 세수가 바뀐다. 최근 3년 연속 세수결손이 발생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도 경제전망 능력이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면 국민 앞에 진솔하게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이 우선이다. 장밋빛 전망을 할 때는 대대적으로 알리고선 최종 결과는 알아볼 수 없게 숨기는 정부의 태도는 시험을 망쳐 성적표를 숨기는 학생과 다를 바 없다. 정부는 내년도 실질성장률 전망치를 3.1%로 제시했다. 1년 뒤 받아볼 성적표가 ‘2017년 경제정책방향’의 한구석에 또다시 처박혀 있지는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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