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재정 갈등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23일 3∼5세 누리과정(무상보육)의 내년도 예산 편성을 끝내 거부했다. 반면 보건복지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 중인 청년수당 예산은 반영됐다. 영유아 67만 명의 보육료 지원이 당장 끊길 위기란다. 박 시장이 ‘엄마 표심 이탈’이라는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청년수당은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쯤 되니 예산 갈등은 단순한 ‘쩐의 전쟁’의 차원을 넘어서는 형국이다. 선거를 겨냥해 자신만의 업적을 각인시키기 위한 위정자들의 정치적 플랜이 국민 복지를 볼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과 의구심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권의 주요 대권 주자인 박 시장에겐 대표 브랜드가 부족하다는 평이 많다.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상징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청년 실업 문제가 시대적 과제로 대두된 지금 청년수당은 박 시장에겐 청년 표심을 공략할 대단히 매력적인 카드임에 틀림없다.
박근혜 정부와 여권은 청년 실업 문제의 해결이라는 시대적 요청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야권 주자인 박 시장의 ‘나홀로’ 치적 쌓기에 힘을 실어주는 건 곤란하다. 정부가 사회보장위원회를 통해 지자체 복지를 차단하는 것도 그런 맥락 때문일 것이다.
무상보육 갈등도 비슷한 정치적 프레임이 투영돼 있다. 무상보육 0∼5세 전면 확대는 사실 박 대통령의 작품이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직장인과 전업주부에 차등을 두고 단계적으로 실시하자’는 반대를 물리치고 전면 확대를 강행했다. 선거용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여야의 명운을 건 대권 싸움 앞에선 이견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약속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다는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지자체에 예산 부담을 지우더라도 전면 무상보육 기조를 깨고 싶지 않을 것이다. 박 시장은 이런 누리과정 예산의 문제점과 갈등을 박근혜표 복지에 흠집을 낼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는 듯한 인상이다. 국민 복지가 정치공학에 의해 춤추고 있다는 지적은 이래서 나온다.
복지의 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은 사실 복지 개혁을 가장 혹독하게 진행한 나라다. 1990년대 경제 침체 이후 실업급여 등 현금 복지를 하향 조정하고, 대신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사회서비스 복지는 유지했다. 당시 사민당을 필두로 한 좌파 진영도 개혁에 동참해 현 스웨덴 복지의 근간을 세웠다.
반면 정권 교체 때마다 새 복지를 누더기처럼 확대했던 그리스는 결국 재정위기에 빠져 나라가 거덜 났다. 지금도 이익단체와 정파적 이익에 갇힌 정치인들 사이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먼저 누리과정 예산의 정부 부담을 늘리겠다고 선언하면서 지자체와의 대화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박 시장은 타 지역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대권의 꿈을 이루게 되면 전국의 청년을 상대로 수당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해 보면 어떨까. 정치라는 선글라스를 벗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복지는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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