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친구들과 모임에서 새해 다짐을 공유했다. 저마다 체중 조절, 어학 공부 등 단골 메뉴를 꺼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독특한 선언을 했다. 그는 “1일(日) 1폐(廢) 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하루에 물건을 하나씩 버리겠다는 것.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그의 말은 이렇다.
서랍장을 열어 보니 안 쓰는 물건들로 차고 넘쳤다. 유효 기간이 한참 지난 쿠폰부터 홈쇼핑에서 충동구매한 마사지 기기, 야심 차게 샀으나 정작 신을 엄두를 못 내는 킬힐…. 심지어 고장 난 CD플레이어나 학창 시절 편지처럼 화석과 다름없는 물건도 적지 않았다.
그는 “이런 물건들 없이도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 수 있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일단 추억이 담긴 물건에 대해서는 ‘이별식’을 거하게 했다. 1년 이상 한 번도 손대지 않은 물건은 한데 모아 가차 없이 내다 버렸다. 그랬더니 방에 여유 공간이 생겼고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무엇보다도 주변이 정돈되니 집중이 훨씬 잘된다고 했다.
우리는 맞장구쳤다. ‘혹시’ 하는 마음에 물건을 버리지 않거나 버리지 못해 굳이 ‘생활의 군살’을 만든다.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상에 무턱대고 서류를 쌓아 놓는다. 서너 달 묵혀 놓아 맨 밑에 깔린 서류가 무엇인지 모를 지경인 때도 있다. 또 컴퓨터 바탕화면을 여러 아이콘으로 덮어 놓는다. 그 아이콘을 클릭할 일은 1년에 한두 번인데도 말이다.
전문가들은 버리지 못하는 습관은 물건의 문제라기보다는 심리의 문제로 본다. 심하게는 ‘저장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 이른바 ‘호더(hoarder)’들이 있다. 다시는 읽지 않을 신문 잡지 등을 쌓아 두며 일상이 힘들 정도로 잡동사니 더미 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미루는 습관이나 우유부단함, 완벽주의가 사물에 투영되어 강박으로 이어졌다는 게 학자들의 설명이다.
이런 강박은 물건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잡동사니(mental clutter)도 적지 않다. 시시때때로 e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확인하고 출퇴근길에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인터넷 포털을 들여다보며 주말에는 무엇을 하든 TV부터 켜 놓는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두뇌가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와 같아서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띄워 놓으면 과부하가 걸린다고 경고한다. 여러 업무를 번갈아 하면 뇌 인지 기능은 기존 업무와 관련된 규칙을 차단하고 새로운 업무를 위한 규칙을 새로 작동시킨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추가로 걸리고 결국 생산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새해에는 더 많이 이루겠다는 결의에 앞서 더 많이 버리겠다고 다짐한다. 우리는 물질의 홍수와 정보의 홍수 속에 산다. 시간과 공간을 비워낸 뒤에 생겨나는 ‘잉여로움’이 오히려 미덕인 시대다. 이는 일의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하고 집중하는 삶의 태도다. 비워야 채워진다. 2016년에는 새로운 채움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길 기대한다. 나는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부터 당장 내다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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