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법(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불린다. 외환위기 이후 크게 증가한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가 만든 특별법이어서다. 비정규직 기간이 2년을 초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 해고법’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정규직 전환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오히려 2년이 되기 직전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공공기관들조차 이 법을 잘 지키지 않았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사이, 비정규직 근로자는 이미 600만 명을 넘었다.
노동 개혁의 핵심적인 의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줄여 보자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근로자 본인이 동의하면 고용 기간을 최대 4년까지 늘리는 안을 내놨다. 다만 청년층의 피해를 막기 위해 35세 이상으로만 한정했다. 일단 고용 기간을 4년으로 늘려 2년 안에 해고되지 않게 하는 한편 근속 기간도 늘려 정규직 전환율도 높여 보자는, 일종의 차선책이었다. 하지만 야당과 노동계는 비정규직을 오히려 더 확대할 수 있다며 반대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기간제법을 철회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얘기다.
지금부터는 잘 알져지지 않은 얘기다. 고용 기간 연장만 기간제법 개정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으로 4년을 근무했는데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이직 수당’을 지급받고, 1년 미만을 일한 비정규직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는 내용도 있다.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비용’을 높이면 비정규직이 줄어들고, 정규직 전환율도 높일 수 있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이 밖에도 선박, 철도, 항공기, 자동차 등 여객사업의 생명·안전 업무는 비정규직 채용을 아예 금지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특히 기간제법에는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최대 3회(2년 내)로 제한하는 내용도 포함됐었다. 쪼개기 계약이란 비정규직을 고용하면서 몇 달 또는 며칠씩 나눠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뜻한다. 계약 기간을 잘게 쪼개면 2년 이상 일했어도 근속기간 2년을 채우기가 불가능한 점을 노려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는 꼼수로 사용돼 왔다. 쪼개기 계약의 피해는 청년층에 집중된다. 2014년 9월에는 7번이나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다 해고된 20대 공공기관 직원이 “24개월 꽉 채워 쓰고 버려졌다”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하기도 했다.
기간제법이 철회되면서 고용 기간 연장은 무산됐다. 야당과 노동계가 일단 승리한 것이다. 하지만 쪼개기 제한 등 다른 방안도 함께 폐기될 운명에 놓였다. 물론 방법은 있다. 고용 기간 연장만 철회하고, 나머지 방안은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국회를 보면 여야 모두 그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결국 올해도 청년들은 쪼개기 계약으로 일해야 하고, 비정규직 선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며 배를 타야 한다. 청년과 비정규직을 위한다며 거리 곳곳에 걸린 여야 정당의 현수막들은 이번에도 거짓말이 될 것 같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