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게 메시지는 ‘양날의 칼’이다. 말 한마디, 슬로건 하나 때문에 선거의 승부가 갈리고 정치생명이 좌우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메시지의 명수’로 꼽힌다. 지난해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말한 “배신의 정치”라는 메시지는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에 날개를 달아줬고 유승민 원내대표의 퇴진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18일에는 ‘민생 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 서명운동’에 참여해 경제활성화법 처리에 강한 메시지를 보냈고,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처리의 원동력이 됐다.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어떤 메시지를 내시라’고 조언을 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배우고 있다”고 혀를 내두른다. “박 대통령이 ‘정치 10단’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는 평가도 심심찮게 들린다.
다만 박 대통령이 법안 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국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요즘 너무 자주 내보내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국무회의, 대통령수석비서관회의 등 공식적으로 메시지를 내놓는 자리는 물론이고 현장 방문, 신년 인사회, 각계 간담회 등에서도 법안 처리를 촉구하고 국회를 비판하는 발언이 잦아서다.
2일 국무회의는 입법을 촉구하는 메시지의 종합판이었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주로 언급했던 이른바 쟁점 법안 8개와 함께 10개 법안 처리를 추가로 요구하자 여권 내에서는 “이 법들을 처리하려면 무슨 법을 야당에 내줘야 하느냐”는 탄식이 나왔다. 표현의 수위도 격해지고 있다. 3일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동행한 여당 의원들에게 “(노동개혁법 통과 등을 위해) 피를 토하면서 연설을 하세요”라고 주문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섬뜩했다”는 이도 있었다.
박 대통령도 본인이 처리를 촉구하는 법안일수록 야당의 반대 수위가 높아져 법안 처리는 오히려 늦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으로서는 민생과 경제, 안보를 위한 핵심 법안들의 처리가 필요하다는 ‘진정성’ 때문에 자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청와대 참모들은 설명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의원내각제 요소가 가미돼 있다. 국가 원수(元首)이자 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국회에 법안 처리를 촉구하고 국민 여론을 상대로 호소하는 건 비난할 일이 아니다. 5년이라는 한정된 임기 중 이미 3년 가까이 지나 버린 시점인 만큼 박 대통령의 절박한 심정도 짐작할 수 있다.
메시지가 반복되면 듣는 사람의 뇌리에 각인돼 효과가 증폭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내성(耐性)이 생길 수도 있다.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 버린 환자를 치료할 약을 찾기는 지극히 어렵다. 꼭 필요한 약을 제때, 필요한 분량만 써야 하는 것처럼 박 대통령의 메시지도 적시에 적절한 만큼 내는 게 보다 효과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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