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꽃처럼 아름답지 않은’ 대학생활이 등장하는 화제 드라마 ‘치즈 인더 트랩’(tvN)의 한 장면. 수업 중 손민수(윤지원)가 과제 발표를 하자 같은 과 홍설(김고은)은 “본인이 작성한 것 맞나. 내가 오타도 수정 안 하고 보고서 판매 사이트에 올린 것과 같다”며 교수와 학생들 앞에서 면박을 준다. 아동판 ‘레미제라블’에서 읽은 장발장과 은촛대의 감동을 간직하고 있는 기자는 ‘홍설이 수업이 끝난 뒤 민수를 찾아가 자복할 기회를 주면 어땠을까’ 하는 아름다운 생각이 들었다.
대학 때부터 표절을 장려하자는 뜻이 아니다. 청년들 사이의 관계가 그만큼 팍팍해졌다는 얘기다. 공부 안 한 친구를 위해 친구들이 합심해 시험 때 ‘커닝’을 돕는 1980년대 TV 드라마의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드라마 가지고 너무 호들갑떨지 말라고? 15일 ‘사회적 웰빙의 새로운 모색’이라는 학술대회(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주최)에서 나온 ‘한국 사회정신건강에 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한국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경제, 정서, 가사 지원을 누구에게 요청하느냐는 물음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는 답이 2004년보다 대체로 늘었는데 특히 20대에서 급증했다. 가족보다 친구, 동료, 이웃의 지원이 더 약화됐다는 결과도 나왔다.
청년들이 취업에 전념하느라 친구 관계도 소홀해지고, 고시원 옥탑 반지하에서 혼자 사는 이들이 늘면서 고립이 심화됐다는 뜻이다. ‘연결돼야 건강하다’(구혜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 등)는 제목의 이 발표문은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사람은 풍부한 사람에 비해 긍정적인 정서, 고통에서 회복하는 탄력성 등 정신건강이 나빴다고 밝혔다.
다음 발표문 ‘비교할수록 괴롭다’(양준용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원)를 보면 더 우울해진다. 연령이 낮을수록 자신과 주변의 처지를 많이 비교했다. 그렇다고 꼭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구소득이 적으면 비교 스트레스가 컸다.
취업 못한 서민 청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판이다. 혼자 알바와 공부만 하며 지내자니 정신건강에 나쁘고, 동창회 등에 나가 가까운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비교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지난해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58개 국가 중 47위.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건강수명이 낮은 남미 국가들보다도 지수가 낮았던 것은 ‘사회적 지지’가 이처럼 취약한 탓이 컸다. 고독은 원할 때 즐겨야 달콤한 것. 불가항력적 고독은 처절할 뿐이다.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연구에서 정당, 시민단체, 취미 문화 모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동하는 일은 비교 스트레스를 늘리지 않고 공동체 의식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들이 ‘청년당’이라도 만들어 여의도에 진출하면 뭔가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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