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인 기자는 지난해 9월부터 월세, 정확히 말하면 ‘준(準)전세’(보증금이 20년 치 월세 총합보다 많은 경우) 생활을 시작했다. 매달 월세를 내는 건 대학생 때 자취를 한 이후 처음이다. 돌이켜보면 여러 집을 전전했다. 2004년 결혼하면서 방 두 칸짜리 아파트 전세로 시작했다. 오르는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두어 번 이사를 다니다 덜컥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그리고 ‘하우스푸어’가 됐다.
이후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다시 집을 옮겼다. 살던 집을 전세로 내놓고 다른 집에 전세로 들어갔다. 전세금 차액으로 빚을 일부 갚아 숨을 돌리나 싶었지만 재계약 때 전세를 구하지 못해 결국 월세로 옮겼다. 10여 년 새 전세 세입자, 자가 거주자, 전세 집주인 겸 월세 세입자까지 다양한 세입자 생활을 맛본 셈이다.
처음 경험하는 월세는 어려웠다. 매달 40만 원씩 빠져나가니 가계부를 쓰는 아내의 한숨이 커졌다. 집을 구할 때엔 보증금과 월세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어서 ‘공정가격’을 알 수 없었다. 집에 하자가 생겼을 때는 어디까지 집주인에게 요구해야 할지도 애매했다. 월세를 선불로 낼지 후불로 낼지도 헷갈렸다.
월세를 살면서 궁금한 것도 많아졌다. 월세가 저금리에 따른 일시적 유행일까, 아니면 앞으로 쭉 월세로 살게 될까. 내 월세 받아간 집주인은 자금을 어떻게 굴릴까. 월세로 돌리면서 남은 보증금 관리를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은 있을까. 애들 결혼할 때 전세라도 마련해주려면 목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월세가 보편화된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매달 돈이 빠지는 월세로 살다가 덜컥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흔히 요즘을 ‘월세시대’라고 한다. 세입자들이 전세를 살다가 월세로 산다는 게 단지 임대료 지불방식이 바뀌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의 정책과 임대차시장의 관행은 월세시대를 맞을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지난달 동아일보와 주택산업연구원이 한국의 월세 관행과 제도를 분석한 결과 100점 만점에 47점의 낙제점 수준이었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정부도 월세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중산층 임대주택(뉴스테이) 정책이 대표적이다. 뉴스테이는 저소득층만 산다는 임대주택에 대한 편견을 깨뜨렸다. 금융위원회의 ‘전세보증금 투자풀’도 신선하다. 원금 보장이나 높은 투자 수익률 등 해결할 과제가 적잖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으려는 노력은 인정할 만하다.
여전히 보완할 과제도 많다. 무엇보다 ‘집을 더 지으면 가격은 떨어진다’는 단순한 공급 논리만 앞세워선 곤란하다. 주거문제, 복지문제, 고용문제 등을 연계한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월세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정책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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