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인 네이버 웹툰 ‘나이트런’은 인간들이 우주를 배경으로 괴수의 공격에 맞서는 얘기다. 괴수와 싸웠던 ‘기사단’ 체제가 혼란에 빠지자 ‘신(新)연맹’이 떠오르고, 두 세력은 세계대전을 벌인다. 그림체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거대 서사와 공상과학(SF)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자신 있게 권할 만한 작품이다.
흥미로운 것은 만화에 등장하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무기 ‘스퀘어 오브젝트’다. 공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작동하는 이 인공지능은 최종 피해 규모 최소화를 목표로 민간인이 죽더라도 괴수를 향해 폭탄을 날리도록 설계됐다. 기상 예보, 행성 개조에 활용될 뿐 아니라 정책 제안 능력까지 가졌다.
만화 속 인공지능에 미국 중국의 지역 내 경쟁, 식민 지배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재군비에 나서려는 일본 사이에서 우리가 취할 외교정책을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까? 피도 눈물도 없는 이 인공지능이라면 아마 현실주의적 입장에 가까우리라.
최근 발간된 책 ‘외교 상상력’(김정섭 지음·MID)은 “일본의 정치군사적 역할 확대에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말한다. 동북아 안보의 최대 불확실성은 존재감이 커진 중국이고, 일본의 역할 확대가 지역 내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얘기다. 책은 “다만 한일 안보 협력이 중국 대(對) 미일의 견제구도에 종속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 전국시대의 합종연횡책(合從連橫策)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겠다. 대체로 진나라가 급부상한 상황에서 나머지 여섯 나라가 세로 방향으로 연합해 진나라에 맞서자는 게 합종책이고, 진나라와 가로 방향으로 힘을 합쳐 다른 나라를 공격하자는 게 연횡책이다. 합종책이 실패하자 나머지 국가들은 진나라에 의해 멸망당한다.
국제정치학의 동맹 이론도 연횡보다 합종 쪽으로 기운다. 강국이 등장하면 비교적 약한 주변국들이 뭉쳐 견제하며 ‘세력균형(밸런싱)’을 이루는 게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강국에 영합하는 ‘편승(밴드왜거닝)’ 전략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강국의 전횡에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는 탓이다.
지난해 말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한일 간 안전 보장과 군사적 협력을 포함한 큰 평화 시스템의 구축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아시아여성기금’ 이사로 일해 논란도 있는 인물이지만 평화주의자로 살아온 그의 입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강조하는 듯한 얘기가 나왔을 때는 좀 의아했다. 아마 이 같은 맥락에서 한 말일 것이다.
만화 ‘나이트런’의 주인공은 인공지능 무기를 두고 “저건 기계일 뿐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야. 나아지기 위해 변해야 하는 것도 (인간이야)”라고 말한다. 만화 속 인공지능이 실재한다고 해도 일제의 포학을 겪은 한국인의 역사와 감정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리와 역사적 정의의 실현을 조화시키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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