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기자는 동아일보의 2015년 연중 기획 시리즈인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에 참여했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총 250회에 걸쳐 연재한 장기 기획물이었던 만큼 독자를 비롯해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들, 사회 각계각층의 명사들로부터 다양한 아이디어를 받았다.
그때 두 건 이상의 개선 제안이 나왔지만 쓰지 못한 아이템이 하나 있다. 바로 ‘화장실 휴지통’ 문제다. 한 편집국 기자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가장 놀라는 문화가 바로 뚜껑 없는 휴지통”이라며 “변기 옆 휴지통이 악취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외국 근무를 오래한 고위공무원 역시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혐오문화 중 하나가 화장실 휴지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지면에 실리지 않았다. 아침에 독자들이 읽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 화장실 휴지통이 화장실 관리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찮게 제기됐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구글 검색창에서 ‘한국 화장실(Korean Toilet)’을 검색하면 더러운 한국 화장실 사진만 등장한다. 대부분 변기 옆에 파란색 뚜껑 없는 휴지통이 놓여 있는 사진이다. 한국인이 자주 찾는 일본 오사카(大阪)의 한 화장실에는 한글로 “부탁! 사용 후 화장지는 변기에 넣어 흘려보내 주세요”라는 종이까지 붙었다.
화장지를 그냥 변기에 흘려버리면 배수 문제가 생긴다고 아는 사람이 많다. 화장지 제조사인 유한킴벌리에 물어 보니 “화장실에서 쓰는 소위 두루마리 화장지는 ‘화장실용 화장지’라는 별도 품명으로 판매한다”며 “20초 만에 물에 풀어지는 만큼 변기에 흘려버려도 배관 막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변기 옆에 왜 휴지통을 놓을까. 기자가 자주 찾는 서울 중구 일대의 사무실 4곳의 화장실을 조사해 보니 2곳에 변기 옆 휴지통이 있었다. 환경미화원 아주머니에게 휴지통을 유지하는 이유를 묻자 “휴지통이 없으면 더 귀찮아진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각종 위생용품과 스타킹, 물티슈 등을 변기에 버려 배관이 자주 막히는 문제 때문에 휴지통을 없앴다가 다시 만든 곳도 있었다.
한국에 첫 화장실용 화장지가 선보인 것은 1971년. 그 이전까지는 신문지나 공책 등 다양한 종이를 화장실에서 썼다. 당연히 휴지통에 모아 버려야 했다. 그때의 습관이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유한킴벌리가 2013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용한 화장지를 변기에 바로 흘려버리는 비율은 응답자의 51%에 그쳤다.
그동안 우리가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익숙해진 표어가 바로 ‘휴지는 휴지통에’다. 사람들은 으레 뒤처리를 끝낸 화장지를 휴지로 생각해 휴지통에 버렸다. “화장실에 휴지통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사람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시민들의 고정관념을 바꿔야 할 때다. 최근 남미 지역에서도 변기 옆 휴지통 없애기 캠페인이 시작됐다고 한다. ‘화장지는 변기에,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정도의 표어를 화장실마다 부착하는 건 어떨까. 중요한 볼일을 보면서 휴지통에서 흘러나오는 타인의 냄새를 맡는 문화는 이제 바꿀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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