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차를 몰고 남서 방향으로 20분 정도 가면 리서 시가 나온다. 인구가 2만2000명이 조금 넘는 이 작은 도시에선 세계 최대 꽃 축제인 ‘쾨켄호프(텃밭) 꽃 축제’가 한창이다. 면적 32만 m²(약 10만 평)의 쾨켄호프 공원엔 튤립 장미 수선화 등 700만 송이 꽃이 피어 있다. 꽃 축제를 모두 둘러보려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린다.
쾨켄호프 꽃축제는 20세기 중반 위기에 내몰렸던 네덜란드 농부들이 자구책으로 마련한 신품종 꽃전시회다. 튤립의 대량 생산으로 수익성이 떨어지자 농부들은 수요를 늘리기 위해 꽃전시회를 생각해냈다. 1950년 첫해에만 23만6000명이 다녀갔다. 이후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생산되는 튤립과 장미 품종 중 90% 이상을 보유한 원예 종주국으로 성장했다.
네덜란드 농부들은 농업을 1차 산업이 아니라 자본집약적 장치산업으로 봤다. 농부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식물환경제어장치, 자동운송시스템, 로봇착유기, 양돈자동분류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첨단산업을 지향했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 30년간 토마토의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2배나 늘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탁월한 기후, 저임금 노동력을 앞세운 중남미와 아프리카 신흥농업국들의 도전에 차별화와 재수출 무역 같은 묘안으로 맞섰다. 신선한 채소 과일 육류는 가까운 독일이나 프랑스에 팔았다. 미국이나 중남미 같은 원거리 시장엔 가공식품을 수출했다. ‘네덜란드’라는 파워 브랜드를 활용해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네덜란드 브랜드로 포장해 다시 수출하는 재수출 무역도 추진했다.
감소세에 접어든 농민의 수를 보완하기 위해 규모화, 조직화에 나섰다. 농가당 평균 경지면적(25.7ha)은 한국(1.5ha)의 17배 규모다. 가족농 중심이라 미국, 남미 등 대규모 농장과 비교하면 규모의 경제를 만들기 어려웠던 약점은 협동조합, 산업클러스터 등 네트워크로 보완했다.
이런 노력으로 네덜란드는 연평균 소득 9만 달러(약 1억350만 원)나 되는 부자 농가를 탄생시켰다. 네덜란드 수출의 16%가 농업에서 발생하는데 액수만 연간 110조 원 이상이다. 네덜란드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농식품 수출국이다. 농업에서도 막대한 수익이 발생하자 농촌 젊은이들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가업을 기꺼이 이어받기 시작했다. 농업의 미래는 밝다.
네덜란드 정부 부처 이름에는 ‘농업’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2010년 농업부서가 경제부와 통합돼 경제농업부로 이름이 바뀌더니 2012년 부서 이름에서 아예 ‘농업’이라는 단어를 뺐다. 정부는 농가를 직접 지원하기보다는 큰 틀에서 방향만 제시한다. 나머지는 농부들이 스스로 해결한다. 네덜란드의 전체 경지 면적(184만 ha)은 한국(173만 ha)과 비슷하지만 한국의 생산성은 네덜란드의 45%에 불과하다. 위기에 내몰렸던 네덜란드 농부들의 전략을 곱씹어봐야 할 때다. 지원금이 많다고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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