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1884년 창단 이후 1, 2부 리그를 오르내리며 하위권만 전전했던 레스터시티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시즌 전 도박업체들이 정한 레스터시티의 우승 확률은 5000분의 1(0.02%). 레스터시티의 우승에 1만 원을 걸면 5000만 원을 주겠다는 뜻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살아있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발견한 것과 같다”고 논평할 만큼 ‘여우군단(레스터시티의 애칭)’의 우승은 기적에 가깝다.
여우군단의 우승이 기적인 이유는 또 있다. EPL은 맨체스터의 두 팀(유나이티드와 시티)과 첼시, 아스널 같은 4개의 ‘대기업’이 독점한 지 오래다. EPL이 1992년 현 체제로 개편된 후 ‘빅4’가 우승하지 못한 시즌은 1994∼1995시즌(블랙번)과 올해 단 두 번뿐이다. “축구공은 둥글다”는 얘기는 적어도 EPL에서는 맞지 않았다.
“바보야! 문제는 돈이야.” 빅4가 EPL을 독점하는 과정이 그랬다.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전 세계에서 선수를 싹쓸이한다. 박지성도 그렇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갔다. 우수한 선수들이 모이다 보니 좋은 성적 역시 당연하고, TV 중계권료 등 막대한 수익이 뒤따라온다. 빅4는 이 돈으로 다시 우수한 선수를 사와 성적을 유지한다. 레스터시티 같은 ‘중소기업’이 이런 독점구조를 깨려면 부자가 인수하거나, 스스로 자산과 수익을 늘려 ‘대기업’이 돼야 한다. 하지만 레스터시티는 이런 공식을 따르지 않고도 독점구조를 깨는 데 성공했다.
기적의 비결은 ‘사람’과 ‘전략’이다. 우승의 주역인 제이미 바디(24골), 리야드 마흐레즈(17골) 등은 최근까지도 8부와 5부리그에서 뛰던 무명이었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 역시 1부리그 우승 경력이 전혀 없다. 그러나 라니에리 감독은 이들에게도 일류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한물간 전술로 평가받던 선(先)수비 후(後)역습 전술로 기적을 일궈냈다. 돈은 없었지만 사람과 전략으로 ‘축구공은 둥글다’는 명제를 증명한 것이다.
여우군단의 기적은 우리 노동시장에도 큰 화두를 던진다. 한국의 노동시장에도 바디와 마흐레즈 같은 청년이 많다. 라니에리 감독과 레스터시티처럼 독창적인 전략으로 독점시장에 도전하는 리더와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 그러나 대기업과 정규직이 독점한 노동시장 구조는 이들의 도전과 기적을 철저히 가로막고 있다. 한국의 청년과 중소기업들은 레스터시티 같은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 노동시장에도 이런 기적이 곳곳에서 일어나야 한다. 바디와 마흐레즈가 기적을 일궈낼 수 있었던 건 ‘경기장’이라는 무대와 ‘둥근 축구공’이라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개혁을 통해 바디와 마흐레즈 같은 청년들에게 무대를 마련해주고, 레스터시티 같은 중소기업도 도전이 가능한 기회를 준다면, 우리 청년과 중소기업도 기적을 일궈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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