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거 우리 집에 LP로 있었는데…. 그게 30만 원이라고? 아우, 이사할 때 버렸는데!”
이 비슷한 말을 1년에 몇 번 듣는다. 요즘 LP 레코드 값이 금값이다. 당대엔 수십만 장 팔린 베스트셀러, 집집마다 전축 옆에 하나씩 꽂아뒀던 음반들도 요즘 중고로 구하려고 보면 몇만 원, 몇십만 원이 예사다.
급류처럼 굽이치며 한국 가정을 휩쓸고 간 부동산 파동이며 전근이며 뭐 그런 것들 탓인지 무슨 이사들을 그렇게 많이 다녔는지. 이사 갈 때마다 책이나 LP 레코드를 뭘 그렇게 많이 버렸는지. 가끔 그 생각이 나 아쉽다.
김광석 다시부르기 1집은 1993년에 나왔다. ‘이등병의 편지’가 첫 곡이고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거리에서’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이 담겼다. 이 음반은 중고시장에서 몇 년 전만 해도 3만 원(이것도 비싸다!)이면 샀는데 이제 못 해도 10만∼15만 원은 줘야 구할 수 있다. 상태가 좋아 새것에 가까운 물건은 30만 원을 호가한다.
나이 좀 먹고 엄마가 버린 턴테이블이 다시 그리워 오디오 장만하면 어떤 취한 밤에 왜 광석이 형 목소리를 LP로 한 번쯤 듣고 싶단 생각이 뜬금없이 드는 건지…. 판을 버린 엄마 잘못일까, CD에서 다운로드 거쳐 스트리밍까지 옮아온 디지털 세상 잘못일까, 아님 그냥 청승맞은 내 잘못일까.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그때 우리가 내다버린 새까만 LP판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소각장 잿더미로 사라진 걸까. 음반사 일에 청춘을 바친 LP 마니아에게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가 반문을 받았다. “LP 레코드 도매상이 우리나라 사업자등록증상에 뭐라고 업종이 분류돼 있는지 아세요?” 그야, 모르죠. “고물상요. 가정에서 버린 LP판 중에 진짜 완전 폐기된 건 30%나 될까요. 나머진 고물상들이 주워 다 곱게 분류해 중고 음반 소매상들한테 상자째 넘기거든요. 일부는 폐PVC로 분류돼서 다시 새 LP 만드는 데 재활용됐을 거고요.”
그래도 그렇지 고작 20년 된 유명한 판이 원가의 몇십 배에 팔릴 정도로 씨가 말랐을까. 음반업자가 말을 이었다. “마니아들 사이에 거래는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요. 다만 오프라인에 매장을 열 정도로 충분하진 않을 거예요. 수요, 공급 둘 다 말예요.”
생각해 보니 LP 레코드만 귀한 게 아니다.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오른 ‘강남스타일’이 담긴 앨범 CD, 싸이의 6집 ‘싸이6甲 Part.1’을 지금 사는 일은 예상외로 어렵다. 얼마 전 만난 평론가는 외국에서 친구가 와서 사주려고 시내 큰 서점에 붙은 음반점에 갔는데 못 구했다고 했다. “그나마 몇 안 남은 시내 음반사 몇 군데를 돌았는데도 못 구했어요. 거참, 진땀 뺐네.”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휘리릭’ 쓸어내리는 사이에 오늘도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오늘도 어딘가로 이사하고 그 뒤에 덩그러니 박스 몇 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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