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재영]느려 터진 한국 철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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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경제부 기자
김재영 경제부 기자
최근 중국 언론에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 수주전과 관련한 기사가 실렸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싱가포르까지 350km 구간을 연결하는 최대 150억 달러(약 17조70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다. 기사는 중국 컨소시엄이 기술력과 비용에서 앞서 있다며 수주 성공에 자신감을 드러낸 뒤 일본 컨소시엄, 독일의 지멘스, 프랑스의 알스톰 등 경쟁업체 상황도 소개했다.

뭔가 허전했다. 지난해 10월 한국도 한국철도시설공단, 코레일 등 25개 기관·기업이 참여한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전에 뛰어들었지만 중국 언론 기사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등 현지 언론 보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냉정하게 말하면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 셈이다.

최근 고속철도 수주전에서 중국과 일본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보다 4년 늦은 2008년 고속철도를 개통한 중국은 자국 내에 1만7000km의 고속철도를 놓으며 기술을 습득해 강자로 부상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 150km 구간의 고속철도 사업을 따냈고, 미국 라스베이거스∼로스앤젤레스 370km 구간도 수주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에 밀려 쓴맛을 본 일본은 인도 뭄바이∼아마다바드 505km 구간을 따내며 인도의 첫 고속철도 사업을 선점했다.

한국은 조용하다. 최근 철도시설공단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경전철 1단계(5.8km) 사업의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은 경사다. 하지만 고속철도 사업에 비해 규모도 작을뿐더러 경전철 수주가 향후 고속철도 수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세계 네 번째로 고속열차를 개발했지만 시장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해 2012년에야 동력분산식 열차 개발에 성공했다. 그마저도 코레일과 현대로템이 가격 협상에 난항을 겪으면서 상업운전 시점이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울산 미포만 항공사진과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 그림으로 돈을 빌려 조선소를 시작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신화만 기대할 순 없다.

물론 틈새는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활용하면 의외의 수확을 거둘 수도 있다. 터키에서도 한국의 차세대 고속철도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강영일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은 “엄청난 금융 지원을 앞세운 중국과 일본의 공세가 강하지만, 건설비 및 운영비를 절감하고 적극적으로 기술 이전을 하는 등 한국식 모델을 제시해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주춤대는 사이 지난해 일본에선 리니어 신칸센이 시험 철로에서 시속 603km의 대기록을 세웠다. 2007년 프랑스 TGV가 이룬 시속 574km의 기록을 경신했다. 11일 미국에선 시속 1200km 음속열차 ‘하이퍼루프’의 첫 주행시험이 열렸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속도 경쟁 속에서 한국 철도는 느려 터졌다.
 
김재영 경제부 기자 redfoot@donga.com
#말레이시아#싱가포르#고속철도#철도시설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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