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잘 알고 있지만 막상 귀로 들으면 섭섭해지는 말이다. ‘아무도 너를 책임져줄 수 없으니, 스스로 알아서 잘 해내라’란 의미다. 2014년 세월호,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올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취재하며 보니 각자도생을 ‘삶의 모토’로 삼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한국사회의 자조감이 느껴져 씁쓸했다.
최근 각자도생에 대한 스웨덴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기회가 있었다. 스웨덴 출장길에서 만난 다큐멘터리 감독 에리크 간디니 씨와의 대화에서였다. 그는 한국적 상황에 대해 격한 공감을 표하더니, 스웨덴 사람들의 ‘홀로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스웨덴이 가족과 함께 살기에 천국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은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 경제적 이유만으로 결혼생활을 이어가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갈라선다.”
그는 최근 영화 ‘스웨덴식 사랑의 이론’을 통해 이런 생각들을 풀어냈다. 실제로 스웨덴의 1인 가구 비율은 34%에 이른다. 홀로 자녀를 키우는 싱글족(8%)까지 합치면 10명 중 4명은 배우자 없이 살아가는 셈이다.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우리의 1인 가구 비율(약 25%)보다 오히려 훨씬 높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가면서 스웨덴과 한국의 각자도생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한국이 어쩔 수 없이 각자도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스웨덴은 든든한 사회적 안전망에 기반을 두고 자발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각자도생에는 ‘혼자 살아도 우린 불안하지 않아’라는 확신이 깔려 있다. 흥미진진하게 대화를 시작했지만 내 가슴속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간디니 씨와의 대화를 통해 스웨덴을 본으로 삼아 우리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우리 사회 한쪽에서는 스웨덴을 보편적 복지의 천국으로 묘사하며 복지 확대의 근거로 삼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선제적 구조조정의 성공모델’로 치켜세우는 등 양극단의 활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1970년대에 세금 부과 방식을 개인별 부과로 전환해 여성의 노동시장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 남편의 재력을 믿고 집에 있는 여성들에게 ‘일해야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스웨덴을 보편적 복지의 천국으로만 인식하면 안 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선제적 구조조정도 대량 실업의 충격을 최소화할 사회안전망이 충분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일례로 스웨덴의 공공교육비지원센터인 CSN은 56세까지 대학등록금을 초저금리로 대출해준다. 교육 중 사망하면 대출금 상환 의무가 없어진다. 우리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재교육 지원제도를 갖춘 것이다. 스웨덴의 구조조정을 모델로 삼으면서도 그 이후의 실업자 지원책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이래서 나온다. 충분한 고민 없는 스웨덴 활용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낳을 수밖에 없다. 더 세밀하고 균형감을 갖춘 스웨덴 활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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