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신공항’에 대한 해법을 묻기 위해 2009년 ‘동남권 신공항’ 연구용역에 참여한 전문가에게 전화했더니 손사래부터 쳤다. 지역별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용역 과정에서 극심한 압력을 받았고, ‘경제성이 없다’는 보고서를 낸 뒤에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고 그는 회고했다.
신공항은 처음부터 정치적이었다. 2007년 대선 공약으로 등장하면서 전국적 관심사로 부각됐다. 2011년 3월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와 백지화됐지만 2012년 대선 공약을 통해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수요가 없다던 결론은 3년 만인 2014년에 뒤집혔다.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국내 기관은 믿을 수 없다”는 영남권의 요구에 정부는 지난해 프랑스 업체인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 사전 타당성 검토 용역을 맡겼다.
영남권 신공항 입지 발표일이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밀양을 지지하는 대구·경북·울산·경남과 가덕도를 지지하는 부산으로 갈려 사활을 건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 결과 발표도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 ‘불복 선언’까지 나온다. 양측 모두 “정치적 고려 없이 순수하게 기술적으로 평가하면 우리가 반드시 이긴다”고 자신한다.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오면 “평가가 공정하지 못했다”고 반발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적에게 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은 상대방에 대한 극단적 공격으로 나타났다. 제3자가 보기엔 입지의 장점보다는 단점만 도드라진다. ‘우리가 상대보다 낫다’는 얘기보단 ‘상대방은 절대 공항 건설이 불가능한 곳’이라는 점만 강조됐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밀양과 가덕도, 둘 중에서 선택하기보다는 김해공항 확장 등 제3의 대안을 찾는 것이 낫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지역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정작 국책사업의 주체가 돼야 할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 대선 공약이니 추진은 해야겠지만 입지 결정에 대한 비난과 책임은 피하고 싶다는 속내다. 국토교통부는 “용역업체가 알아서 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는 외국 업체에 용역을 맡기면서 신공항의 기본 설계 방향조차 정하지 않고 있다. 신공항의 성격·기능·규모, 입지 선정, 평가 및 결론까지 모조리 외국 용역업체에 떠맡겼다. 용역 결과가 나오면 앵무새처럼 발표만 하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외국 용역업체가 한국의 국가 정책을 결정해 주는 셈이 됐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정치적으로 추진된 정책이 지역이기주의와 포퓰리즘에 휘둘린 나쁜 선례를 남길 것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우선 해당 지역은 용역 결과 발표를 조용히 기다려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정부도 지역민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갈등을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형 국책사업의 경우 ‘정부 지원금 획득 정치(pork barrel politics)’ 행태가 나타나지 않도록 비용을 중앙과 지방이 분담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정책은 용역기관이 아니라 정부가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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