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한창이던 지난해 8월 개인적으로 ‘롯데 불매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롯데의 국적 논란이나, 집안싸움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대기업에 대한 분노 때문은 아니었다. 70여 년간 지분 구조가 베일에 싸여 있던 기업을 취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삼복더위에 휴가를 반납하고 매일 야근해야 했던 개인적 이유에서 출발한 소심한 복수였다.
그렇게 시작된 ‘롯데 없이 살아보기’는 생각보다 불편하고 번거로웠다. 롯데백화점을 눈앞에 두고도 경쟁사 백화점까지 20분을 더 걸었다. 세븐일레븐을 외면하고 다른 편의점을 찾았고, 롯데슈퍼 대신 한 정거장 거리의 마트에 가는 노력을 들여야 했다.
어느 날 롯데그룹이 운영하는 커피프랜차이즈 엔제리너스를 피해 횡단보도를 세 개나 건너 찾아간 한 카페에서의 일이다. 에이드 음료를 주문했더니 점원은 냉장고에서 음료에 섞기 위해 롯데칠성음료의 칠성사이다를 꺼냈다. 롯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에서 롯데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날 홀로 벌이던 불매운동을 접었다.
국내 재계 서열 5위인 롯데는 총 93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화학, 건설, 금융 부문을 제외하면 국민 생활과 밀접한 유통, 식품, 서비스 회사가 65개나 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롯데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잠자는 일이 가능하다. 이쯤 되면 국민들이 동의하든 그러지 않든 롯데는 부인할 수 없는 ‘국민기업’이다.
하지만 최근 롯데그룹의 상황을 보면 국민기업이란 타이틀을 붙이기가 대단히 난감하다. 10일 롯데그룹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비자금 조성 혐의와 오너가의 부동산 거래 의혹, 일감 몰아주기, 정관계 로비 등의 혐의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아직 수사 단계의 의혹들이긴 해도 지난해 형제가 경영권 다툼을 벌인 이후 국민들은 롯데에 두 번째로 실망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재벌에 대한 국민정서가 악화돼 존경받는 국민기업이 나오기 더욱 힘들어진다.
160년간 5대에 걸쳐 가족경영을 해온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다. 매출이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약 30%를 차지하지만, 세계 1000대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적이 없다. 이들은 자녀들에게 ‘소유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라고 가르치면서 이익의 대부분을 사회공헌 목적의 발렌베리 재단으로 넣는다. 소수 지분으로 기업 경영이 가능한 차등의결권 제도 등이 있는 스웨덴의 사례를 곧바로 국내에 적용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국내 기업에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롯데가 이익의 대부분을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롯데백화점 식당에서 낸 밥값이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오너 일가의 이익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 ‘비자금 저수지’, ‘일감 몰아주기’ 등의 표현은 국민기업에는 붙어선 안 될 말이다. 비단 롯데그룹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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