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 A 과장의 말이다.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알림이 뜰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했다. 카카오톡이 보편화되면서 국·실장은 물론이고 장차관까지 단톡방을 만들어 시도 때도 없이 업무를 지시한다. 그는 “답을 안 하면 왜 답이 없냐고 지적하는 선배까지 있다”며 “휴일에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카톡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이 근로자 2402명을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 등 스마트기기를 통한 초과 근로시간이 주당 평균 11시간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기기로 업무가 편리해지긴 했지만, 휴식 시간에도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났다.
근로기준법상 주당 근로시간은 40시간이다. 그동안 정부 지침에 따라 최대 28시간까지 연장·휴일근로가 가능했지만 지침이 법에 어긋난다는 판결이 잇달아 나오면서 이를 12시간으로 줄이는 논의가 현재 진행 중이다. 하지만 퇴근 후나 휴일에 스마트기기로 업무를 지시받아 일을 하는 시간까지 연장근로로 인정해 수당을 지급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 법정 근로시간이 줄더라도 직장인의 체감 근로시간은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이미 선진국들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근로자의 중요한 권리로 본다. 이는 휴식 시간에 업무와 철저히 단절된다는 의미다. 사용자나 상사에겐 이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많은 회사는 퇴근 후 스마트폰 e메일 기능이 원천 차단되고, 출근 30분 전에야 복구된다. 이 시간에는 e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업무를 지시하는 것도 엄격히 금지된다. 휴식 시간에는 회사와 업무는 물론이고 상사와도 연결되지 않아야 진정한 휴식을 누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물리적으론 휴식이지만 직원을 온라인으로 불러내 일을 시키는 건 ‘21세기형 부당 노동행위’로 부를 만하다.
한국은 어떨까. LG유플러스 등 일부 대기업에서 심야 시간과 휴일에 업무 목적 카톡 사용을 금지하는 매뉴얼을 도입했지만, 말 그대로 매뉴얼일 뿐이다. 정부가 현행법을 토대로 스마트기기 업무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도 있지만,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그러는 사이 많은 직장인은 여전히 ‘단톡방 스트레스’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그래서 반갑다. 개정안은 근로시간 이외의 시간에 메신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업무 지시를 내리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 여당은 이 개정안을 노동개혁법과 함께 주요 과제로 논의해야 한다. 근로자의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 역시 노동개혁이다. ‘까똑’이란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엄마 아빠를 바라보며 울상 짓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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