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에 다니는 A 부장은 이달 통장에 찍힌 월급을 보고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최근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아 성과급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최고 S등급부터 A∼E까지 6개 등급으로 나뉜다. 이 중 D, E등급 기관은 성과급이 없다. 직급별 호봉별 차이는 있지만 A등급과 D등급 이하 기관의 성과급은 부장급 기준으로 최대 3000만 원까지 차이가 난다.
공기업 30곳과 준정부기관 31곳, 강소형기관 55곳 등 정부의 경영평가 대상인 공공기관들이 매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목을 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경영평가에서는 총 103곳이 C등급 이상을 받아 성과급을 받게 됐다.
매년 초 공공기관 경영성과를 어떻게 평가할지 기준을 담은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이 확정되면, 공공기관들은 곧바로 평가전담팀을 가동한다. 정부가 공개한 점수표에 맞춰 어떻게 하면 점수를 최대한 올릴 수 있는지 연구하고, 각 조직은 물론 개인의 업무 목표도 여기에 맞춰 설정한다. 한 공기업 직원은 “1년 치 농사 계획이 모두 경영평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전한다. 오랜 고민 끝에 짜놓은 5년, 10년짜리 계획도 매년 정부의 경영평가 점수표에 따라 같이 출렁거린다. 올해처럼 성과연봉제 같은 항목이 중간에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1년 치 업무 계획마저 전면 수정에 들어간다.
“결국 중요한 건 세상 모든 시험이 그렇듯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겁니다. 올해 정부에서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게 뭔지 눈치껏 맞혀야 합니다.” 올해 성과급을 못 받게 된 한 공기업 직원의 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또 같은 정권 안에서도 정책이 바뀔 때마다 경영평가 잣대는 달라진다.
올해 평가에서 E등급으로 낙제점을 받은 한국광물자원공사는 2010년 이명박 정부 때는 A등급을 받은 모범생이었다. 한국석유공사(E등급), 한국가스공사(D등급)도 당시 B등급으로 성과급을 받았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광물자원공사에 대해 “볼리비아 광산을 성공적으로 개발하는 등 해외 시장 개척의 성과를 거뒀다”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올해에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았다. 당시 무분별하게 빚을 내 추진했던 해외 자원 개발로 부채 비율이 높아지자 재무건전성 악화를 들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다. 경영평가 성적표가 공개되기 전부터 해외 자원 개발에 손댔던 공공기관은 올해 최하위 등급으로 정해져 있다는 얘기마저 돌았다. 이번에 재무건전성을 개선했다며 좋은 평가를 받은 공공기관들도 5년 뒤에는 비용 절감에만 매달리느라 꼭 필요한 자산을 팔아버렸다거나, 간접고용이 지나치게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생겼다며 낙제점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권에 따라,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에 따라 고무줄처럼 오락가락하는 평가기준에 또 다른 공기업 직원은 “복지부동하고 있으면 중간은 가지 않겠느냐”고 자조했다. 공공기관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뚝심 있게 개혁을 추진하려면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평가기준이 필요하다. 리더십 등 비계량 평가를 축소하는 등 평가의 객관성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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