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위기 이전과 진행 도중 및 이후에 결정한 선택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든 선택 대안이 유망해 보이지 않았는데도 선택을 해야만 했던 금융위기 당시 내가 얻었던 한 가지 교훈이 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해법을 갖고 개입할 능력이 있는지 겸허히 생각해 보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2014년 미국에서 발행된 후 지난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의 저자 서문 중 일부다. 이 책의 저자는 2009년 미국 오바마 정부의 첫 재무장관이었던 티머시 가이트너다. 가이트너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재무장관으로 일하면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과 함께 금융위기를 잘 극복해 미국 경제를 회복시켜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위기 상황을 가정한 재무건전성 심사를 뜻한다. 가이트너는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한 주요 조치 중 하나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했다. 테스트 결과에 따라 공적자금 투입 여부가 결정됐다.
버냉키 전 의장도 지난해 ‘행동하는 용기’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냈다. 버냉키와 가이트너는 책에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상황과 선택들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가이트너는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금융위기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금융위기는 다르지만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집에 불이 난 경험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교훈을 주기를 소망한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의 고위 공직자들도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많이 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석에서 만난 전직 고위 공직자는 재임 기간 동안 겪은 여러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회고록을 낼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절대 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회고록에 등장해 본의 아니게 다치거나 상처를 받는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다”고 했다.
물론 회고록을 쓰다 보면 의도치 않게 누군가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회고록이 가져올 불편한 파장보다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주는 순기능이 훨씬 클 것 같다는 생각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위기 극복에 나섰던 강만수 전 장관은 지난해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을 내면서 “오류와 모순까지 후배들에게 교훈이 되고 학자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했다. 예금보험공사도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역대 예보 사장 8인의 회고록인 ‘위기를 넘어 희망을 보다’를 최근 발간했다.
주요 산업 구조조정에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까지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앞서 위기를 경험한 고위 공직자들의 생생한 기록은 그 자체로 훌륭한 참고서가 될 수 있다. “적어두지 않았다면 그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공적 영역에서의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는 공직자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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