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관람한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전(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한 여성이 여중생으로 보이는 딸에게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 내고 있었다. 딸은 굳은 표정으로 오디오 가이드를 들은 후 약간 주눅 든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어지는 엄마의 말. “그대로 적어.”
두 사람이 와서 오디오 가이드를 하나만 빌린 경우 이어폰을 한 쪽씩 귀에 꽂고 함께 듣는 경우가 많은데, 엄마는 딸만 듣게 했다.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고 도저히 작품에 집중할 수가 없어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취조 당하듯 그림을 보는 여학생에게 이 전시회는 수행평가 과제를 위한 괴로운 작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리라.
딱딱하고 무표정한 여학생의 얼굴 위로 발레 공연장에서의 기억이 겹쳐졌다. 발레 공연은 어린이 관객이 많은 편이다. 발레 학원에서 단체로 관람하기도 하고 부모가 발레를 배우는 자녀를 데리고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됐을까. 바로 앞자리에 여자 아이와 엄마가 앉았다. 공연이 시작되자 아이는 이내 의자에 기대 졸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이의 허리를 곧추세우며 손가락으로 무대를 가리켰다. 아이는 잠시 바로 앉는가 싶더니 다시 졸았다. 엄마도 지지 않고 아이 허리를 다잡았다. 잘 수도, 그렇다고 무시무시한 지루함을 참을 수도 없던 아이는 급기야 좌우로 허리를 마구 비비 꼬기 시작했다. 결국 엄마의 손바닥이 아이의 등짝을 철썩 내려치기에 이르렀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작은 활극’에 발레리나들의 사뿐사뿐한 동작은 마치 저 세상의 것처럼 멀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큰 맘 먹고 비싼 돈을 주고 왔으니 아이가 최대한 많이 보고 느끼기를 바랄 것이다. 건성건성 보거나 조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부아가 치밀어 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을까. 낯설었다거나 흥미로웠다거나 혹은 지겨워 죽을 뻔했다거나, 그 어떤 것을 느껴도 좋다. 대충 본 그림이, 잠결에 들은 음악이나 졸다가 눈을 떴을 때 본 장면이 의식 혹은 무의식에 남을 것이다. 기자도 어린 시절 졸다가 깨다가 하며 봤던 뮤지컬을 커서 다시 봤을 때 ‘어, 이런 장면이 있었나. 옛날보다 훨씬 재미있네!’ 하며 신선하게 감상했던 경험이 있다.
이제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전시장, 공연장을 찾는 가족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감상을 강요하지는 말자. 아이가 전시회, 공연장이란 말만 들어도 손사래를 치고 기겁하는 건 부모가 원하는 바도 아닐 것이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던 시간으로 기억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관람 예의는 지키되 아이가 자유롭게 즐기게 해 줬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자라고, 문화 체험은 그렇게 쌓여 간다. 알게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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