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를 불허한 데 대한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우선 공정위가 최선의 결정을 내린 것인지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인지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하다. 과도하게 시간을 끈 공정위로서는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자초한 셈이다.
공정위는 어쨌든 결론을 냈고 공은 이제 시장에 넘겨졌다. 당장 케이블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업계 구조조정의 물꼬를 터 줄 것으로 기대했던 CJ헬로비전 매각이 결국 무산된 탓이다. 국내 대기업의 한 임원은 “사실 케이블사업자를 인수할 수 있는 곳은 통신사업자가 유일했지만 이젠 물 건너갔다”라며 “남은 인수 후보는 사모펀드(PE)밖에 없는데 가능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했다. SK그룹으로서도 ‘실패의 충격’에서 벗어날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복귀 후 이어진 ‘공격 앞으로’ 전략도 다소 주춤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려되는 부분은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 전체가 급속히 냉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침 SK와 함께 가장 공격적인 M&A 전략을 펼치던 롯데그룹이 전방위적 검찰 수사에 꼼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다. 검찰은 특히 국내외 M&A를 통한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을 롯데 수사의 주요 타깃 중 하나로 삼고 있다.
롯데그룹이 탈법을 저질렀는지 아닌지는 검찰 수사를 통해 명백히 밝혀질 일이다. 그러나 수사 결과가 나오고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재계에서는 “섣부른 M&A가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한 해외 로펌의 한국 대표는 “특정 기업의 M&A가 대외적 요인에 의해 좌절될 경우 다른 기업들까지도 M&A 협상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M&A 구설수가 산업 구조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금은 조선업, 해운업이 1차 구조조정 타깃이지만 철강, 건설 등으로 삽시간에 번질 가능성이 크다.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들이나 이 기회를 틈타 새로운 성장전략을 마련하려는 기업들로선 가장 빠른 방법이 M&A다. 막연한 ‘M&A 포비아(공포심)’ 확산이 각 산업 구조조정에 급브레이크를 걸 여지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2014년의 삼성과 한화, 지난해의 삼성과 롯데 간 ‘빅딜’은 M&A를 통한 선제적 구조조정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 간 사업 재편이 지지부진하면 결국은 해외 자본의 힘을 빌리는 수순을 밟게 된다. 유력한 후보는 5년 전부터 국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 자본이다. 중국 기업의 지난해 국내 기업 M&A 거래 건수는 33건으로, 금액으로 보면 총 20억 달러나 된다. 전년과 비교하면 거래 건수는 3배, 금액은 2.3배로 늘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헐값에 매물로 나온 알짜 사업들이 중국으로 흘러들어 갈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처럼 급변하는 시기에 기업들의 ‘제자리걸음’은 퇴보나 마찬가지다. M&A 포비아란 말이 그저 스쳐가는 우려에 그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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