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할리우드 배우 맷 데이먼이 영화 홍보차 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보스턴 레드삭스 야구 모자와 검은색 재킷, 청바지의 수수한 옷차림과 여심을 흔드는 환한 미소는 그대로였지만 입국 경로는 바뀌었다. 주연 여배우와 함께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했던 3년 전과 달리 그는 이번에는 홀로 전용기를 타고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왔다. 지난달 16일 김포공항에 자가용 비행기 터미널인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가 생겼기 때문이다.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 옆에 들어선 SGBAC는 국내 최초의 비즈니스 항공기 전용 운항지원시설이다. 전용 검역·출입국·세관(CIQ) 시설과 VIP룸 등을 갖춘 터미널(2983m²), 항공기 8대를 동시에 수용해 정비 등을 수행하는 격납고(1만2490m²), 7대를 댈 수 있는 주기장(자동차로 치면 옥외주차장) 등을 갖췄다.
일반 터미널을 이용하면 20∼30분 걸리는 출입국 절차가 전용 터미널을 이용할 경우 5분 이내로 단축된다. 터미널에서 차를 타고 바로 올림픽대로에 진입할 수 있어 사생활도 보호받을 수 있다. 이점은 더 있다. 터미널 이용료 등 직접 수익은 물론이고 고용 창출, 항공기 정비, 부품, 개조 등 관련 산업 성장 효과도 기대된다. SGBAC는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하는 해외 기업인, 유명 인사에게는 한국의 첫 관문인 셈이어서 국격(國格) 제고 효과도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항공센터를 바라보는 항공업계의 심정은 조마조마하다. 아직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준비가 안 돼 있어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터미널에 검역(농림축산식품부) 출입국(법무부) 세관(관세청)을 담당하는 상주 직원도 없다. 지금은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에서 직원이 출장을 오는 식이어서 항공기 이착륙 이틀 전에 미리 통보해야 한다.
식당으로 치면 ‘당장은 손님이 적으니 요리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예약이 들어오면 옆집에서 빌려 오겠다’는 셈이다. 손님이 늘면 차차 직원을 늘리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준비 안 된 식당엔 손님이 영영 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외항기를 유치하는 에이전트들이 불안해서 전용기를 타고 김포로 들어오기보다 인천으로 들어오는 게 낫다고 안내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한다.
세계 각국은 2만 대가 넘는 비즈니스 항공기 시장을 놓고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도쿄, 베이징,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등은 한국보다 앞서 이미 거점 공항에 비즈니스항공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출발부터 늦은 상황에서 자칫 ‘한국은 불편하다’고 소문이 나면 시장에서 영영 소외될 수도 있다.
한국공항공사도 SGBAC가 ‘부자들을 위한 사치 시설’이 아니라 ‘외화 획득 시설’이라는 점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지난달 16일 SGBAC 개장식은 관계자 70여 명만 모여 조용히 치러졌다. 450억 원을 들여 기껏 조성한 시설을 지금처럼 쉬쉬하며 소극적으로 운영하다간 자칫 파리만 날리는 지방공항의 꼴이 될 수도 있다. 데이먼도 다음 방한 땐 김포 대신 다시 인천을 찾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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