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한 증권사의 임원은 비상장주식이던 게임회사 넥슨의 주식 특혜 매입과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49)을 “자본주의 파괴범”이라고 불렀다. 검사가 되려고 대학 때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그는 사상 처음으로 현직 검사장이 구속됐다는 것에 꽤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썩은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효용 가치가 없다”며 “투자자들이 기업 가치, 거시 경제 분석과 같은 정상적인 투자 활동보다 ‘주식 대박’ ‘미공개정보 이용’ ‘탈세’와 같은 행위가 더 효율적이라는 환상이 커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증시에 비해 혼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국내 증시에서 불법과 탈법을 조장하는 ‘진경준 효과’가 걱정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인의 일탈은 모방을 통해 순식간에 전염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진 검사장 사건이 알려지고 그에게 126억 원의 수익을 안겨준 비상장주식 거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면서 문의와 거래가 크게 늘었다. 그의 부정부패가 금융시장에 가져온 효과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비공식적 장외주식 시장에서 거래된 비상장주식의 거래대금이 최소 6조 원으로 추정됐다. 그 안에는 진 검사장처럼 ‘대박’을 꿈꾸는 불법과 탈법의 거대한 지하경제가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진 검사장의 타락이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다.
또 ‘진경준 효과’는 우리 사회가 ‘큰돈을 쌓은 사람은 뭔가 구린 게 있다’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부에 대한 혐오와 불신은 가뜩이나 뿌리가 허약한 한국 자본주의를 더 취약하게 만든다. 법을 지키는 자산가의 정상적 투자나 소비 활동까지 위축시켜 경제의 활력마저 떨어지게 만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금융인 등 화이트칼라 범죄 단속에 나섰던 래니 브루어 전 미국 법무부 차관은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화이트칼라 범죄가 지능적이고 전문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화이트칼라 범죄는 일반인의 재산권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회병리학적 현상”이라고 경고했다.
돈이 올바르게 쓰이려면 시작부터 깨끗하고 정당해야 한다. 수원지가 깨끗한 물은 땅을 따라 흐르며 식수와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중간에 일부 오염되더라도 물이 흐르며 자연 정화될 수 있다. 반면 수원지 자체가 오염되거나 오염 구간이 많으면 자연 정화 기능은 무력화되고 주변은 아무도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된다. 누구보다 깨끗하고 당당하게 돈을 벌어야 하는 ‘윗물’인 엘리트의 범죄를 엄단해야 하는 이유다.
진 검사장뿐일까.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결탁해 돈을 받은 변호사들과 브로커, 비자금 조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대기업들도 ‘돈은 땀과 노력에 비례한다’는 자본주의의 믿음을 손상시킨 주범이다. ‘자본주의 파괴범’이라는 오명을 덮어 쓰지 않으려면 돈과 권력을 가진 우리 사회 엘리트들이 몸과 마음가짐부터 단단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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