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용지 크기에 500쪽이 넘었다. 모조지를 썼는지 엄청 무겁다. “평소에는 학교 사물함에 교과서를 넣고 다닌다”는 중학생 아들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이런 책이라면 2, 3권만 배낭에 넣고 다녀도 어깨가 축 처질 것이다.
체육 필기시험을 앞둔 아이의 교과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작고 가벼웠던 예전 교과서와 비교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내용이었다. 스포츠 기자를 10년 넘게 했는데도 모르는 게 수두룩했다.
교과서는 스포츠로 통하는 거의 모든 종목을 담고 있다. 야구, 축구, 농구 등의 인기 종목과 육상, 수영 등의 기초 종목은 빼놓을 수 없다고 치자. 세팍타크로, 우슈 등 아시아경기에서도 있다 없다 하는 종목에 제기차기, 쌍검대무까지 포함돼 있다.
생소한 종목을 소개한다고 트집 잡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종목은 너무 많고 설명은 지나치게 어렵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육상은 ‘기록 도전 활동’의 하나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다시 ‘속도 도전’과 ‘거리 도전’으로 분류됐다. ‘속도 도전’은 다시 트랙 경기, 로드 경기 등으로 나뉘는데 트랙 경기에서 결승선을 지나는 방법으로는 ‘러닝 피니시’, ‘런지 피니시’(상체를 내밀며 통과), ‘슈러그 피니시’(어깨를 옆으로 틀며 통과)가 있다고 그림과 함께 적어 놨다. 슈러그(Shrug) 피니시라…. 육상을 맡고 있지만 듣도 보도 못한 용어다. 포털 사이트 뉴스를 검색해 봤지만 한 건도 안 나온다. 체조는 채점 방식도 상세히 다루고 있다. 난도 A는 0.1점, G는 0.7점이라는 걸 체조 관계자가 아닌데 알 필요가 있을까. ‘링 운동은 높이 550cm로부터 내려온 2개의 링 줄과 연결된 링(지름 18cm)에 매달려 흔들기와 버티기 등의 기술을 구사’한다는 대목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시험에 이런 ‘숫자’가 잘 나온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잘 알아야 쉽게 설명하는 법인데 교과서 곳곳에는 모르고 베낀 흔적이 역력했다.
체육 교과서뿐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미술과 디자인을 공부한 지인은 국내 중학교 미술 교과서를 보고 “욕이 나왔다”고 했다. 관련 분야를 전공한 사람조차 모르고, 알 필요 없는 내용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요즘 중고생들은 시험 기간에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은 공부하기 어렵단다. ‘슈러그 피니시’ 같은 걸로 가득한 과목들도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요 과목의 선행학습이 판을 치는 이유다. 사교육비를 쏟아 부어 미리 공부하지 않고 시험을 잘 보기는 애초부터 글러먹은 일이다.
체육 교과서로 돌아오자. 맨 앞에 있는 ‘이 책의 구성과 특징’은 이렇게 시작한다. “체육 교과는 ‘신체 활동’을 통하여 체력 및 운동 능력을 기르며, 바람직한 품성과 사회성을 갖추어 건강하고 활기찬 삶에 필요한 능력을 함양하는 교과이다.”
그렇게 써 놓곤 이렇게 만들었다. 이런 교과서로 공부하느라 성장기의 아이들이 신체 활동은커녕 잠도 충분히 못 자고 있다. 정말 ‘뭣이 중헌디!’를 모르는 체육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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