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15세 소녀의 방문은 굳건히 닫혀 있었다. “안녕, 나 오늘도 왔어. 밖에 날씨 좋은데 오후에 운동 잘하고 와.”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아동청소년복지플래너(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김에덴 씨(33·여)는 방문 틈 사이로 말을 걸었다.
여느 중학생이라면 학교를 갈 때지만 아이는 67일째 결석한 상태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폭력을 당했지만 학교는 피해자인 소녀를 전학조치만 했다. 먼 동네로 이사 간 중학교에서도 적응이 어려웠다. 상담센터를 찾아가 봤지만 “넌 낙오했다” “학교로 빨리 돌아가라”는 충고에 소녀의 마음은 점점 닫혔다.
소식을 듣고, 김 씨는 집으로 찾아갔다. 대꾸를 하건 안 하건 안부를 전하기 위해 2주에 한 번씩 방문 앞에 섰다. 2개월 만에 ‘톡’ 하고 잠근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럽게 밖에서 이야기하지 마요, 짜증 나요”라는 말소리가 안에서 들렸다. 김 씨는 “그렇게 방 안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무엇을 고민하고 힘들어했는지 알았다”고 말했다.
지역 센터와 주변 이웃들이 나서면서 소녀의 인생은 달라졌다. 8월 중졸 검정고시에서 전 과목 합격을 했다.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재능기부자가 미술 개인지도를 해주고 있다. 소녀는 최근 열린 아동청소년축제 행사에서 사회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아동학대와 학교 밖 청소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주변에서 두 눈을 더 크게 뜨는 것이다. 최근 자치구들도 직접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는 복지서비스 도입을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 성북구는 기존의 어르신 중심 복지제도의 한계를 넘기 위해 어르신복지플래너와 아동청소년복지플래너로 사회복지사를 이원화했다. 동(洞)마다 한 명씩 아동청소년복지플래너를 둔 만큼 위험신호가 감지되는 아이들을 찾기가 수월해졌다.
서대문구에도 동네 히어로들이 있다. 이화·금란중학교에는 정규 수업이 끝나면 1주일에 두 차례 남학생 10여 명이 모인다. 몇 해 전부터 학교 교목(校牧)에게 “집으로 가기 싫어서 밖을 방황하고 다닌다”고 고민을 털어놓은 아이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밥이나 먹여서 집에 보내자고 했던 것이 “수업 내용을 몰라서 잠만 자는데 누가 공부 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고 하자 방과후 보충수업으로 연결됐다. 취지를 들은 인근의 연세대 이화여대 학생들이 일대일 개인교사를 자청했다. 식비 때문에 학교가 애를 먹자 동네 식당 주인들도 나섰다. 10인분을 시키면 15인분씩 푸짐하게 챙겨줬다. 그렇게 공부해서 원하던 자동차 관련 특성화고에 들어간 졸업생은 “나도 후배들 간식 사왔다”며 찾아왔단다. 사랑도 전염이 된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아동 청소년 학대 소식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이 비관적으로 보인다고들 한다. 우리 동네 히어로가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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