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 국회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체육과가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보낸 공문을 공개했다. 장애인실업팀 창단을 권유하면서 에이전트 제도를 적극 활용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발송일은 올해 5월 3일. 지난해 9월 8일에 이어 GKL에 두 번째로 보낸 공문이다. 기자가 공문을 확인한 결과 지난해 문서에는 에이전트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 다시 공문을 보내면서 첫 줄에 ‘관련: 장애인체육과-1056(2015. 9. 8)호’라는 부분을 포함시킨 게 화근이 됐다. 공문 하단의 발송일보다 이 부분이 눈에 잘 띈 탓에 에이전트 내용이 지난해 작성된 것으로 착각한 일부 언론이 “최순실 씨가 만든 더블루케이를 돕기 위해 문체부가 GKL을 압박했다”고 보도했고, 이후 대부분의 언론이 받아썼다.
문체부와 최 씨의 부적절한 관계는 여러 분야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스포츠와 관련해서는 진실이 묻힌 상태다. 장애인체육과가 두 번째 공문을 보낸 5월 3일은 GKL이 내부적으로 종목 선정과 창단 준비를 마친 시점이었고, GKL은 열흘 뒤 창단식을 열었다. 정진완 장애인체육과장은 “GKL 측에서 ‘이사회 통과를 위해 독촉성 공문을 보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했고 그 무렵 문체부 내부 회의에서 모든 스포츠에 에이전트 제도를 활성화하라는 얘기가 나왔기에 그 부분을 추가했다. GKL과 더블루케이가 이미 창단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공문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문체부 산하기관인 GKL이 장애인 실업팀을 만드는 것은 지난해부터 사실상 결정된 일이다. 다만 수영이나 사격을 고려하다 펜싱으로 종목을 바꾼 데에는 펜싱 선수 출신의 고영태 씨가 더블루케이에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펜싱 종목 장애인 팀은 GKL이 처음이기에 장애인 체육계는 크게 반겼다.
의혹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가뜩이나 열악한 장애인체육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내년 지원 예산 편성을 위해 지난달 창단 수요 조사를 실시했다. 창단 의사를 보인 곳은 1곳뿐이었다. 지난해에는 20여 곳이 문의를 해 올해 8개의 실업팀이 탄생했다. 장애인체육회 관계자는 “장애인 팀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져 모두 꺼리고 있는 것 같다. 기존 팀도 해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업팀에서 생계 걱정 없이 운동을 하는 것은 장애인 선수들의 꿈이다. 장애인체육 관계자들이 실업팀 창단을 최우선순위에 두는 것도 그래서다. 어렵게 만들어진 GKL 휠체어펜싱팀이 더블루케이와 관련됐었다는 이유만으로 팀의 존폐를 걱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최 씨가 장애인을 배려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드러난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을 등에 업고 사익을 도모한 사람들 때문에 장애인 선수들이 피해를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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