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일각에선 문재인 전 대표의 뜻이란 이야기도 나오는데 어떻게 받아들이세요?”(기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뜬금없이 단독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가 14시간 만에 철회한 14일 저녁. 민주당 비상의원총회에서 십자포화를 맞고 나온 추 대표에게 던진 기자들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질문의 수준을 높입시다.”
돌아온 대답은 뜬금없었다.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운 엷은 미소였지만 날이 잔뜩 서 있었다.
지난 주말 ‘100만 촛불’의 민심을 목격한 청와대와 국회가 어떤 수습카드를 내놓을지는 모든 국민의 관심사였다. 그런 시국에 제1야당 대표의 일성이 “단독 영수회담”이었으니 그 제안의 배경과 의미를 따져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앞서 7일 대통령의 영수회담 제안을 전하러 국회를 찾은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추 대표였다. 그랬던 추 대표가 대뜸 대통령에게 대화를 제안했으니…. 정치 5, 6단쯤 된다는 중견 정치인도 추 대표의 ‘한 수’를 섣불리 해석하길 주저했다. 혹자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몇 수 앞을 내다본 치밀한 계산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14시간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묻지 않아도 추 대표의 소상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 백번 양보해 공개하기 힘든, 말할 수 없는 정치의 영역을 인정한다 해도 ‘질문 수준’을 운운하며 적당히 뭉개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순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째려보는 눈빛이 떠올랐다.
“가족회사 자금을 유용한 것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우 전 수석은 질문을 던진 기자를 한참 노려봤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이렇게 꼬집었다.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기자에게 저런 ‘눈알 부라림’은 할 수 없을 텐데 말입니다.” 국민적 관심사에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답변해야 할 사회 지도층의 태도라는 면에서 ‘우의 눈빛’과 ‘추의 답변’은 다를 바 없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대통령이 도대체 누구와 국정 운영을 논의했는지 모르겠다는 의혹에서부터 출발해 엉망진창이 된 시국이다. 그 시국을 정리하겠다고 나선 제1야당 대표가 갑작스러운 회담을 제의했는데, 역시 누구와 논의했는지 도무지 아는 사람이 없다. 당내에서조차 “우리가 최순실 당이냐”라는 성토가 터져 나왔다.
대통령비서실장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가 자신도 알지 못했던 최순실의 존재가 드러나자 망신을 당했다. 추 대표의 비서실장도 진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당일 아침까지 “청와대의 언론 플레이일 것”이라는 대답을 내놨다고 한다.
대통령의 90초짜리 녹화 사과가 ‘불통’이란 걸 누구보다 매섭게 지적한 추 대표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끄는 당이 대안세력이 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허물이 되는 이유가 본인에게 적용할 때만 예외가 될 순 없다. 제1야당의 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속이 뒤틀린다고 말을 비틀어 내뱉을 정도로 가벼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줄여서 ‘내로남불’)이라는 식의 태도는 리더십의 바닥만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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