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손효림]마음의 세포 깨우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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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직한 노동이잖아요.”

손효림 문화부 기자
손효림 문화부 기자
 최근 인터뷰한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 씨는 대리운전을 하는 지금이 대학 시간강사를 하던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학은 강의, 행정을 시간강사와 조교에게 많이 의존하지만 제대로 보상해 주지 않고 그들을 ‘숨은 노동자’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반면 대리운전은 애쓴 만큼 벌 수 있단다. 김 씨는 지난해 출간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통해 터무니없는 보수에, 재직증명서도 발급받지 못해 은행 대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시간강사의 현실을 고발했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올해 5월 말, 책 당일 배송 현장을 취재하느라 반나절을 함께 다닌 택배기사 강종원 씨가 떠올랐다. 강 씨도 “열심히 뛴 만큼 버는 ‘정직한 노동’이라고 선배가 권유해 택배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직접 일을 해보니 그 말에 동의하게 됐는지 물었다. 강 씨는 “아직까지는 그렇다”며 씩 웃었다.

 김 씨가 대리운전을 시작한 뒤로 아내는 아이의 장난감, 옷의 가격에 대해 “저건 대리 한 번 해야 살 수 있고, 저건 두 번 해야 살 수 있다”고 말한단다. ‘1대리’, ‘2대리’가 새로운 화폐단위가 되었다는 것.

 강 씨도 마찬가지였다. 꽤 더웠던 그날, 책 배송을 마친 후 땀을 식히고 목도 축일 겸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커피 두 잔을 시켰다. 잔에 든 얼음을 빨대로 휘휘 저으며 커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 씨는 “물건을 볼 때마다 택배 몇 개를 배달해야 살 수 있는지 무의식적으로 계산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강 씨 역시 ‘1택배’, ‘2택배’라는 화폐단위가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었다.

 두 사람은 작은 일에 감사했다. 김 씨는 대리운전 후 시내로 복귀할 방법을 고민하다 우연히 마주친 다른 대리기사에게서 버스 정보를 얻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단다. 강 씨는 가구별 호수가 적혀 있지 않은 다세대주택에서 주문자가 전화를 받지 않아 난감해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문 앞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에게 주문자를 아느냐고 여쭈었다. “손녀인데요”라는 답이 돌아오자 너무나 반가워했다. 강 씨는 “다시 오지 않아도 돼 진짜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분초를 다투기에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곧바로 와도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이들을 보며 몸을 수고롭게 하는 노동이 육체는 물론 마음의 세포까지 하나하나 깨워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감사한 마음을 하루에 그토록 여러 번 갖게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이들도 수시로 상처받고 부정적인 감정도 느끼지만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덧셈 뺄셈 해본다면 결론은 플러스였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김 씨는 대학 연구실보다 거리에서 더 많이 배우고 느낀다고 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거리를 누비는 두 사람을 만나며 기자 역시 배웠다. 자신의 일이 ‘정직한 노동’이라 여기는 이들의 믿음이 앞으로도 깨지지 않기를 바란다.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
#대리사회#김민섭#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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