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으로 만든 극장에는 한겨울의 냉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양옆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 소리 때문에 대화를 하려면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현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예술인들에게 각종 불이익을 준 데 항의하는 의미로, 연극인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운 ‘광장극장 블랙텐트’는 그랬다. 개막식이 열린 10일, 무대 위에 마련된 작은 고사상에는 누런색 돼지저금통과 시루떡, 사과 세 알, 북어 한 마리, 막걸리 두 잔이 올려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16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주 연극이 상연된다. 다음 주에는 극단 고래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그린 ‘빨간시’를, 그 다음 주에는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에서 옷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투영한 ‘그와 그녀의 옷장’을 무대에 올린다.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은 검열하는 이들의 언어가 지닌 폭력성을 들여다보는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을 31일부터 상연한다. 최대 150명이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무료이며,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면 된다. 연극인들은 박근혜 정부가 퇴진할 때까지 공연을 계속할 예정이란다.
방음장치와 냉난방시설은 공연장이 갖춰야 할 필수 요소인데 괜찮을까. 극단 고래의 이해성 연출가는 “자동차 소음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고, 온풍기 두 대를 마련할 예정이다”라며 공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블랙텐트는 4대 국정기조 가운데 하나로 ‘문화 융성’을 내세운 현 정부와 문화계가 파국으로 치달았음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정부는 2014년부터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정해 영화, 뮤지컬, 연극, 전시회 등의 티켓을 할인해주는 정책을 시행했다. 박 대통령은 국산 애니메이션 영화 ‘넛잡: 땅콩도둑들’, 뮤지컬 ‘김종욱 찾기’ 등을 관람했다. 대통령이 그 나름대로 문화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것이라 생각한다. ‘문화가 있는 날’의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도 적지 않았지만 문화계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많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이렇게 되고 말았다.
블랙텐트에 온풍기를 들여놓고 관객들의 온기를 더하더라도 공연을 하기에는 만만찮은 여건임이 분명해 보인다. 갈수록 더 추워진다는데,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관객들은 이를 감내할 수 있을까. 몸이 상하면 배우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진다. 목이 상하면 회복하는데도 적잖은 시간이 든다. 초기에는 의지로 버텨낼 수 있어도 장기간 계속되면 건강에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칼바람이 부는 이 겨울날, 숱한 공공극장과 소극장들을 두고 예술인들이 거리로 나서야 하는 현실은 ‘문화 융성’의 아이러니다.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예술인들이 예술 활동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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