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12일이 지났다. 세계는 여전히 그의 정책, 정신세계, 화법에 적응하느라 고심 중이다. 재임 기간 1460일의 0.8%에 불과한 12일 동안 벌어진 혼란을 생각하면 앞으로 4년을 어떻게 보낼지 아찔하다.
대통령의 핵심 참모는 자신의 보스를 대변한다. 아산정책연구원이 1월 추천 도서로 ‘Death by China’를 선정한 이유다.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은 피터 나바로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썼다. 나바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백악관에 신설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 된 인물이다. 아산연구원은 “동맹국에 더 많은 방위비 분담금 지불을 요구하고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주장하며 중국을 적대시하는 트럼프의 모든 언동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이 책으로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책과 다큐멘터리의 핵심은 ‘중국이 미국의 이익을 갉아먹고 있다.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이다.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로 캔자스 주(州)를 사버릴 수 있으며 월마트에서 중국 제품을 살 때마다 미국인 일자리가 하나씩 없어진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중국이라는 탐욕에 맞서지 않으면 우리는 물론이고 후손의 삶도 곤궁해진다”는 경고와 함께.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중국의 부상(浮上)에서 비롯됐으며 중국의 군사력 증강도 경제 성장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인권 문제도 경제 관점에서 본다. 중국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 저임금이 중국 제품의 원가 절감과 가격 경쟁력의 토대가 되므로 개선돼야 한다는 식이다. 중국의 보조금과 싼 임금을 노리고 산업시설을 옮겨 간 보잉, 제너럴일렉트릭(GE) 같은 미국 기업도 ‘나쁜 놈’으로 규정됐다. “우리는 전투기도 중국산 제품 없이는 못 만든다”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결론은 “잘못된 통상 정책을 바로잡아 중국이 더 이상 미국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겠다”이다. “우리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불사할 준비가 돼 있다”는 대목도 나온다. 아산연구원은 “트럼프는 무역에서 취한 이익을 기반으로 중국이 미국에 군사 도발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의 통상 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왜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 한미 FTA(경제)와 방위비 분담(안보) 문제를 꺼냈는지, 이제 그림이 그려진다. 그에게 안보는 경제이고, 경제는 안보다. 중국만큼은 아니겠지만 트럼프는 한국도 나바로가 해석하는 프리즘을 통해 쳐다볼 가능성이 높다. 상대의 인식이 그런 만큼 우리의 대처도 상대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어야 한다. 외교는 경제처럼, 경제는 외교처럼 해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과 같은 부처별 제각기 대처로는 마땅치 않다. 그래서 당사자가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가 실현될까 봐 두렵다. 경제부총리가 경제-외교를 총괄하기에도 역부족인 상황에서 대선 관리까지 맡기겠다는 건, 해도 너무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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