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전 주한 일본대사는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외교관으로 불린다. 일본 외무성 동북아과장으로 한국 업무를 담당했고 주한 일본대사관 참사관, 공사를 거쳐 대사(2010∼2012년)까지 지내 서울과 인연을 맺었다. 한국어도 구사할 줄 안다.
그가 최근 일본 주간지 ‘다이아몬드’에 칼럼을 실었다. 무토 전 대사는 “한국은 혹독한 경쟁 사회다. 대입 전쟁, 취업난, 노후 불안, 높은 자살률의 사회”라며 “경쟁에서 몸부림쳐도 보상되지 않는 불만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박 대통령이 재임 중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고 했기 때문에 공격 대상이 됐고 또 그 대상이 일본으로 비화했다”고 밝혔다. 이 칼럼의 제목은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좋았다’이다.
외교관은 보통 자신이 근무했던 주재국을 비난하는 일을 삼간다. 국제 관행이자 예양(禮讓·예의를 지켜 공손히 사양함)이기 때문이다. 공직을 떠난 무토 전 대사가 무슨 말을 하든 자유이겠지만 한일 관계를 중시하는 지한파의 글로는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다.
탄핵 사태와 촛불집회 과정에서 표출된 민심은 다양할 것이다. 무토 전 대사의 지적처럼 갖은 병폐가 탄핵을 계기로 수면 위로 드러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한국 사회의 역동성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었을까. 묻힐 뻔했던 진실이 결국은 국민의 힘으로 드러나게 됐다고 평가할 수는 없었을까. 탄핵 사태 초기, 일본 보수 언론에서 ‘최순실에게 놀아난 한국은 법치국가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비아냥거림까지 있었던 터라 이 칼럼을 순수한 의도로 읽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서도 박 대통령은 일본과 관계 개선을 시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설득하지 않아 비판 대상이 됐다. 일본의 진실한 사과가 선결조건이라고 하다가 2015년 12월 28일 갑자기 합의에 동의해 버려 국민이 배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에는 “합의 자체는 불가피했고 받아들이겠다”는 사람도 있다.
무토 전 대사가 이런 전후 사정을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지한파라는 자신의 자리매김이 족쇄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 중견 외교관은 “일본 외무성에서 한국 전문가는 주류가 되기 어렵다. 미국, 중국, 유엔 담당이라는 주류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토 전 대사는 끊임없이 ‘나는 한국 편이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냈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서 주한 미국대사를 비롯해 한국 업무 담당 외교관은 공석이거나 전 정부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지한파냐 아니냐’라는 잣대로 적임 여부를 판단한다면 우리 스스로 청맹과니 함정에 빠지는 꼴이 될 것이다. 한국을 잘 아는 인물이라고 환영할 게 아니라 그들에게 한국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시키고, 그것이 자국의 정책에 반영되도록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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