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프로야구 KIA 코치의 상갓집에서 만난 구단 관계자는 일을 돕던 중학생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 중학생이 KIA 선수가 될 거라며 메이저리그로 도망치지 않도록 밥 사주고 용돈 주며 관리할 거라고 했다. 얼굴에 솜털이 가득하던 그 선수는 KIA 한기주(25)였다.
동성고에 진학한 한기주는 초고교급 투수로 성장했다. 최고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졌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입질이 빗발쳤다. 그러나 그를 영입한 건 일찍부터 공을 들인 KIA였다. 계약금 10억 원짜리 투수 한기주의 탄생이었다. 그는 입단 첫해부터 10승을 올렸다. 최근 몇 년간 부상으로 주춤했지만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아직 젊기에 가능성은 충분하다.
만약 한기주가 미국 프로야구에 직행했다면 어땠을까. 메이저리그 아시아선수 최다승(124승)의 주인공인 박찬호(한화)처럼 대선수로 성장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이너리그에서 고생만 하다 갈 곳을 잃은 대부분 선수의 전철을 밟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메이저리그는 냉혹한 무대다. 선수를 키우기보다는 완성된 기량을 가진 선수를 선호한다. 한국 선수를 영입하는 마인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싼값에 데려가 잘하면 좋고 못하면 거침없이 내친다.
요즘 야구계는 상원고 왼손 투수 김성민의 미국행으로 시끄럽다. 볼티모어는 고교 2학년인 김성민과 55만 달러(약 6억1400만 원)에 계약했다. 대한야구협회는 김성민에 대해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를 내리고 볼티모어에는 한국 고교야구 대회장 입장 금지를 통보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일회성 대책으로 유망주들의 미국 유출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해답은 연고지 우선 지명권인 1차 지명의 부활이다. KIA가 한기주를 영입할 수 있었던 것도 1차 지명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한국 프로야구가 전면 드래프트를 실시한 뒤 각 구단은 사실상 지역 유망주들에 대해 손을 놓고 있다. 잘 키워봐야 다른 팀에 뺏길 수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이 점을 집요하게 공략하고 있다.
1차 지명의 부활은 프로야구 인기의 한 요소인 ‘지역 라이벌 의식 강화’에도 긍정적이다. 지역 야구팬이 보고 싶은 건 그 지역 출신 스타가 해당 연고팀에서 뛰는 모습이다. 광주 출신인 선동열 감독에게 삼성보다 KIA 유니폼이 더 잘 어울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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