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인터뷰 내내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12일 2012 런던 올림픽 후 첫 대표팀 훈련에 소집된 양학선(20·한국체대)에게 금메달리스트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통은 생각보다 심해 보였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도 눈물이 안 났는데…. 귀국한 뒤 눈물이 났다.” 한국 체조가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1960년 로마 대회 이후 52년 만에 체조인의 숙원인 금메달을 따낸 영웅을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일까.
보통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은 정점을 찍고 난 뒤의 허탈감 때문에 슬럼프를 겪는다. 하지만 양학선의 후유증 원인은 사뭇 달랐다. 너무나 1차원적인 이유라 더 당혹스러웠다. 권위주의 시절 민주화 구호에서나 등장할 법한 ‘자유의 부재’가 이유였다.
그는 런던 올림픽 후 유명해지며 대한체조협회, 협회 후원사 포스코건설, 매니지먼트사 IB스포츠, 한국체대 등이 마련한 각종 행사에 불려 다녔다. 8월 11일 귀국한 뒤 고향집에 이틀밖에 머물지 못할 정도로 바쁜 일정이었다. 참석 여부에 대한 양학선의 선택권은 없었다. 그가 만나고 싶었던 고교 은사의 방문은 여타 행사에 밀려 무산됐다.
대부분의 재학생 선수처럼 14일부터 한국체대 기숙사에 머물며 ‘주1회 외박’만 허용된 것도 힘든 점이었다. 양학선의 지도교수인 윤창선 교수는 “한국체대 체육학과 재학생은 방학까지 4년 동안 기숙사 생활이 원칙”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올림픽만 바라보며 4년 동안 사생활을 포기한 선수들을 귀국 3일 만에 소집한 것은 가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휴식 부족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생활 침해였다. 양학선은 일부 체조 관계자로부터 “여자친구 사진을 카카오톡에 올리지 마라. 이제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여자친구와 헤어지라”라는 희한한 요구까지 들어야 했다. 그는 “이런 불만을 얘기하면 주변에선 금메달 딴 뒤에 건방져졌다고 욕을 한다. 나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씁쓸해했다.
양학선의 호소는 젊은 선수의 단순한 성장통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올림픽 영웅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한국 스포츠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특히 법적으로 성인인 선수의 사생활에 대한 간섭은 후진적인 선수 관리의 전형이다. 연애를 하고 안하고는 그의 자유다. 그걸 통제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한국은 런던 올림픽 종합 5위에 오른 스포츠 강국이다. 그에 걸맞은 자율이 보장되는 선진적인 선수 관리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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