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구연맹(KBL) 대회 운영 요강 36조에는 ‘원칙적으로 평일에는 오후 7시에, 토, 일, 공휴일에는 오후 2시 또는 오후 4시에 경기를 한다’고 돼 있다. 이런 원칙을 지키기 어려워 날짜, 시간을 바꿔야 할 때는 경기일 30일 전에 안방 팀이 상대 팀의 동의를 얻어 KBL 총재에게 변경을 신청하거나 이사회의 승인을 얻도록 돼 있다. 이런 규정을 둔 이유는 경기 날짜, 시간을 함부로 바꾸지 말라는 얘기다.
있으나 마나 한 규정이다. 14일 열린 챔피언 결정 2차전 SK-모비스 경기는 당초 일요일 경기임에도 오후 7시에 열리기로 돼 있었다. TV 중계 때문이다. 그러다 지상파 중계가 잡히자 오후 1시 30분으로 당겨졌다. 그리고 경기 당일에는 10분을 늦춰 오후 1시 40분으로 또 바뀌었다. 이날 중계를 맡은 MBC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LA 다저스)의 경기가 길어지자 농구 중계를 늦춘 것이다. 시청률이 보장되는 류현진 경기 중계를 위해 농구 중계를 늦춘 방송사의 입장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중계를 늦춘다고 경기 시작이 1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시간을 또 미룬 KBL의 결정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많다. 방송사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니 플레이오프 일정은 방송사가 짠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KBL은 경기 시간뿐 아니라 날짜도 바꿨다. KBL이 플레이오프 개막 전에 알린 챔피언 결정 5차전은 19일이었다. 그러다 4강 플레이오프가 끝난 뒤 5차전 날짜는 20일로 바뀌었다. 역시 방송 중계 편성 때문이다. 5차전이 하루 밀린 바람에 SK는 집 떠나 적지에서 머물러야 하는 날이 하루 더 늘어 불만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원칙에 관계없이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경우 총재가 경기 날짜, 시간을 바꿀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놨기 때문이다. 농구는 실내 스포츠다. 야구나 축구처럼 날씨 탓으로 경기 일정을 바꿀 수 있는 종목이 아니다. ‘부득이한 사유’는 방송사 중계 눈치를 보기 위해 만들어 놨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방송 중계를 안 해서 농구 인기가 떨어진 게 아니다. 재미가 없으니까 팬들이 안 본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중계를 안 한 건 당연하다. 멀리서 보는 관중도 다 아는 걸 심판만 모르니 짜증이 나서 안 본다. 챔피언 결정 2차전 경기 막판 접전 상황에서 모비스 리카르도 라틀리프의 손을 맞고 나간 볼을 심판들은 못 봤다. 비디오 판독까지 하고서도 판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KBL은 15일 오심을 인정했다. 보기 드문 명승부였다는 SK-인삼공사의 4강 플레이오프 2차전 시청률이 애국가 평균 시청률(0.2%)의 절반도 안 되는 0.05%에 그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TV 중계에 목을 맨다고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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