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난해 9월 런던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은메달리스트 손병준(18·춘천 성수고 3)의 아버지 손은수 씨였다.
병준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공부로는 다른 아이들과 경쟁할 수 없고 사회생활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잔인한 선고’였다. 탁구 선수 출신으로 체육교사를 하며 중학교 탁구팀을 지도하고 있던 아버지는 아들의 손에 라켓을 쥐여줬다. 교실에서 침묵하던 아들은 탁구를 할 때면 활짝 웃었다. 원주의 집을 떠나 춘천의 원룸에서 부자가 함께 지내면서 아들의 탁구 실력은 쑥쑥 늘었고, 지적장애 탁구의 최강자가 됐다(2012년 1월 12일 A8면 참조).
올해 5월 아버지는 춘천시청 탁구팀 사령탑으로 있는 윤길중 감독을 만나 내년 졸업을 앞둔 아들의 진로를 상의했다. 윤 감독은 흔쾌히 병준이를 맡겠다고 했다. 벅찬 희망은 잠시였다. 최근 손 씨는 윤 감독의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춘천시청에서 병준이를 받아줄 수 없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윤 감독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지도하는 비장애인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시키면 병준이의 기량이 더 빨리 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시 체육회 운영위원회가 난색을 표했다. 다른 장애인 선수들도 많은데 병준이만 받아주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게 이유였다”고 말했다.
2013년 11월 현재 장애인체육회에 등록된 19세 이상의 선수는 1만2334명. 그중 장애인 실업팀에 소속된 선수는 163명(1.3%)에 불과하다. 국제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국내에 돌아오면 갈 곳이 없는 게 장애인체육의 서글픈 현실이다. 비장애인과 달리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장애인 선수들에게 실업팀이 없다는 것은 운동은 물론 최소한의 삶까지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적어도 공공기관이라면 장애인을 거부하기 위해 기계적인 형평성을 내세우기보다는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발기준을 마련하는 게 먼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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