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에 앉은 이정근 명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번번이 문턱에 막혔다. 경추장애인인 그는 손도 마음먹은 대로 쓸 수 없다.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낮은 문턱도 넘기 힘들다. 시선을 돌려보지만 경사로도 찾을 수 없다. 혼자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다. 다른 시설에서 애써 찾은 경사로는 너무 가파르다. 장애인 배려와는 거리가 먼 시설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3, 24일 이틀에 걸쳐 평창 겨울올림픽 및 패럴림픽 개최 도시 민간 시설 접근성에 대한 현장 점검을 했다. 지체·시각장애인과 장애인 시설 전문가 6명으로 점검단을 꾸려 숙박업소, 음식점, 관광지를 방문했다.
점검단은 처음 찾은 강원 평창의 한 숙박업소부터 개선해야 할 점을 쏟아냈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나니 보이지 않았던 불편함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모텔의 접객 프런트는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에겐 너무 높아 카드 결제 사인을 하기 힘들었다. 엘리베이터에 점자가 없어 시각장애인을 당황하게 만든 시설도 있었다. 장애인용 화장실이라고 설치는 해놨지만 지지대가 엉뚱한 곳에 달려 있는 ‘면피용’도 있었다. 타고 다니기에는 편하지만 무게가 200kg 가까이 되는 전동 휠체어는 성인 2, 3명이 달라붙어도 들 수 없어 계단 앞에서는 더 취약하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됐다.
점검단은 장애인의 눈높이에 불편하다고 느낀 점들을 가감 없이 쏟아냈고 문체부·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대한장애인체육회 관계자들과 새건축사협의회 건축가들이 이를 경청했다.
이번 사업은 문체부 등 6개 부처가 함께 체결한 ‘무장애 관광도시 창출’ 업무협약의 후속 조치 가운데 하나다. 문체부는 11월까지 약 40억 원을 들여 평창, 강릉, 정선 민간시설의 접근성을 개선할 예정이다. 시설 개선을 신청한 곳은 700개가 넘지만 비용 대비 효율성을 고려해 대상을 선정할 계획이다. 공짜이니 하고 보자는 곳이 아니라 ‘의지’가 있는 업주부터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한 음식점 주인의 말이 큰 호응을 얻은 이유다. 박인수 새건축사협의회 부회장은 “단순한 시설 개선이 아니라 ‘함께 사는 방식’을 고민하며 접근하겠다. 확실히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전병극 문체부 체육협력관은 “현장에 와 보니 개선할 게 너무 많아 부담이 크다. 제한된 예산으로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평창 대회의 레거시(유산)를 만드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11월에 다시 와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꼭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비장애인들에게는 눈에도 띄지 않을 문턱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좌절하게 만드는 거대한 벽이다. 문턱 없는 시설은 아이를 태운 유모차도 쉽게 오갈 수 있다. ‘무장애 도시’ ‘함께 사는 도시’를 향한 노력이 의미 있는 첫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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