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28)의 배구 인생을 하루 24시간에 비교한다면 그는 지금 몇 시쯤 와 있을까. 22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김연경은 “이번 대회(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배구 세계예선)를 치르면서 낮 12시를 조금 지난 것 같다”고 답했다. 여전히 태양이 가장 높게 뜨는 시간에 빗댈 정도로 기량이 절정에 오른 그에게도 이번 예선은 배구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중요한 무대였다. 김연경은 “저에게나 한국 배구에나 정말 중요한 대회였다고 생각한다. 올림픽에 너무 나가고 싶어 터키리그에 있을 때도 이 대회를 기다렸다”며 간절함을 드러냈다.
에이스의 절실함 때문이었을까. 한국은 22일 치러진 도미니카공화국과의 경기(세트스코어 0-3 패배)까지 포함해 총 4승 3패 승점 13점으로 2회 연속 올림픽 진출에 성공했다. 김연경은 “네덜란드와의 경기(3-0 승리) 이후 우리가 원하는 경기 흐름을 가지고 왔다”며 “이후 일본전 승리 등 4연승으로 가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대회를 복기했다.
4년 전 3, 4위전에서 일본에 패하면서 놓친 메달을 이번에는 반드시 따겠다는 각오다. 대표팀은 21일 태국전에서 승점 1점을 추가하며 올림픽 티켓을 확보한 뒤 파이팅 구호를 ‘리우, 고’에서 ‘금메달, 고’로 바꿨다. 김연경은 “런던 올림픽 대표팀에는 언니들의 노련미가 있었다면 이번 대표팀은 젊은 선수들의 강한 체력이 장점”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위아래가 고루 있어 편하다”고 했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올림픽 본선에는 더 강한 팀이 많은데 이 정도 실력으로 우리가 살아남긴 힘들다. 선수들이 스스로 올림픽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여전히 ‘포스트 김연경’으로 불릴 만한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은 것도 사실. 김연경은 후계자로 꼽을 만한 후배가 있느냐는 질문에 “없지 않나. 다들 정신 차려야지”라며 농담 섞인 쓴소리를 남겼다. 이정철 대표팀 감독이 늘 김연경에게 ‘후배에게 관대해지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 또한 비슷한 이유에서다.
김연경은 대표팀 운영 방식에 대한 의견도 덧붙였다. “런던 올림픽 이후 일본이 세대교체를 단행하면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올림픽을 준비한 반면 우리는 매번 감독도 바뀌고 선수도 바뀌면서 그때마다 성적을 내기 바쁘다. 어린 선수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줘 실력이 올라올 수 있도록 4년이라는 시간을 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육성 시스템부터 개선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자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며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최근 소속팀 터키 페네르바흐체와 1년 재계약을 한 김연경은 “다른 리그를 경험해 보려 여기저기 많이 접촉해 봤지만 생각보다 조건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며 “일단 강한 리그에 남기로 했다”고 말했다. 1년 계약을 한 만큼 내년에도 언제든 새로운 무대에 도전할 뜻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연경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국내 무대로 돌아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은퇴 후에는 국내, 해외 팀 또는 대표팀을 가리지 않고 꼭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기왕 할 거면 대표팀 감독이 어떠냐고 묻자 김연경은 “기자들이 감독 인터뷰만 해서 선수들이 기죽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한국(9위)은 개최국을 A조에 시드 배정한 뒤 세계랭킹을 고려해 지그재그로 팀을 배치하는 방식에 따라 개최국 브라질(3위), 러시아(4위), 일본(5위), 아르헨티나(12위) 등과 A조에 속하게 됐다. 마지막 한 팀은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리는 다른 세계 예선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최강 전력으로 꼽히는 미국(1위), 중국(2위)을 피한 것만으로도 해볼 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23일 귀국하는 대표팀은 다음 달 5일 진천선수촌에 다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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