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수 해엔 한 달씩 장기 휴가를 내야 한다. 올림픽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은 올림픽이 벌써 13번째다.
2일(현지 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올림픽 선수촌에서 만난 미국인 패트릭 해셋 씨(58)는 노란색 자원봉사자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에게는 익숙한 옷이다.
그의 올림픽 자원봉사 여정은 자국에서 열린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부터 시작됐다. 이후 여름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자원봉사자로 참가했고,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부터는 겨울올림픽에도 개근 중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는 한국 선수단 전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6회 연속이다.
그의 평소 직업은 조종사다. 평범한 여객기가 아니라 범죄인 수송 전용 비행기를 몬다. 그는 “내가 태우는 손님들은 주로 수갑을 차고 있다. 어떤 손님들은 발에 체인이 감겨 있기도 하다”고 농담을 던졌다.
한국과의 인연은 1985년에 시작됐다. 군 조종사였던 그는 그해부터 1988년까지 서울 용산과 경기 평택 등에서 근무했다. 해셋 씨는 “마지막 군 복무 기간이었던 3년 동안 한국 사람들이 내게 베풀어준 호의를 잊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에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한국 선수단을 돕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맡은 일은 ‘만능 해결사’다. 선수단 안전부터 이동까지 필요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선수단 숙소 수도꼭지가 고장 났을 때 조직위에 알리는 것도 그의 일이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슬픈 일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벌어진 오심 논란이다. 당시 체조의 양태영은 개인종합에서 우승할 만한 성적을 냈다. 하지만 심판들이 점수를 잘못 기재하는 바람에 동메달로 추락했고, 금메달은 미국 선수의 차지가 됐다. 그는 “국제체조연맹은 물론이고 심판들 스스로도 인정한 오심이었다. 하지만 제시간에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판정이 번복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아픈 사건”이라고 했다.
반대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박태환이 실격에서 구제된 것은 아쉬우면서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박태환은 남자 자유형 400m 예선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5시간의 이의 제기 끝에 결국 판정 번복을 이끌어냈다. 국제수영연맹(FINA) 사상 첫 판정 번복이었다. 박태환은 결국 은메달을 땄다. 해셋 씨는 “이의 제기를 하던 관계자들과 함께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기억이 난다. 판정이 번복된 것은 다행이지만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박태환의 메달 색깔은 은이 아니라 금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눈은 이미 2018년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으로 향해 있었다. 인터뷰 말미에 “평창에도 올 것이냐”라고 묻자 그는 “평창 겨울올림픽만 생각하면 벌써 흥분된다. 모처럼 고향에 돌아가는 기분이 들 것”이라고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의 바람이 이뤄진다면 평창 올림픽은 그가 자원봉사자로 참가하는 14번째 올림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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