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2016 리우올림픽/환호]
경기장 시끌벅적… 바람은 안불어… 韓 ‘고척돔 소음 적응 훈련’ 효과
20대 세 선수 모두 올림픽 첫 출전… 화살깃 노란색 통일 ‘금빛 주문’
18발중 15발 만점 ‘무자비한 경기력’ 맞수 엘리슨도 “다시 못 볼 플레이”
미드웨이 해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전쟁의 승부를 뒤집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한국과 맞상대한 미국 대표팀에는 미드웨이함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미국 대표팀은 리우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미드웨이함에서 훈련했다. 퇴역 후 관광용으로 쓰던 항공모함이다. 미국 대표팀 이기식 감독은 “우리가 은메달을 딴 4년 전 런던 올림픽 때처럼 이번에도 바람이 승부를 좌우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바람이 강한 항공모함 위에서 훈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자 단체전 결승전이 열린 7일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무 경기장에는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다. 대한양궁협회 관계자는 “오늘은 날씨 변수가 거의 없는 경기였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국이 야구장에서 했던 훈련이 큰 도움이 됐다. 남자 양궁 대표팀은 지난달 2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소음 대비 훈련을 했다. 정적이 흐르는 양궁장을 벗어나 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야구장에서 모의고사를 치렀다. 결승전이 열린 삼보드로무 경기장은 수백 명의 한국 응원단과 함께 요란한 브라질 관중의 응원으로 시끌벅적했다. 김우진(24)은 “야구장 훈련 상황이 오늘 경기 상황과 비슷했다. 조명 등 유사한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우진, 구본찬(23), 이승윤(21)으로 구성된 남자 대표팀은 이날 제 기량을 맘껏 발휘했다. 셋은 특히 화살의 깃 색깔을 금메달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통일시켜 결승전에 나섰다. 대표팀이 결승전에서 쏜 노란 깃 달린 화살 18발은 모두 표적지 노란색 위에 안착했다. 표적지의 9, 10점이 노란색이다. 대표팀은 결승에서 10점에 15개, 9점에 3개의 화살을 꽂았다. 셋은 이날 점심도 노란 카레라이스를 먹었다.
1번 슈터로 나선 대표팀 주장 김우진은 4년 전 대표팀 탈락으로 겪었던 아픔을 한 방에 털어냈다. 김우진은 3명을 뽑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4위를 해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다. 대표팀 탈락의 충격으로 한동안 양궁을 잊고 살았다. 런던 올림픽 기간에는 TV를 보지도 않았다. 이후로 긴 슬럼프도 겪었다. 국가대표 선발전 탈락 후 그해 10월 열린 전국체육대회에서 전체 46명 중 41등을 했다. 당시 김우진은 ‘내가 다시 활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재기에 성공한 김우진은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1위로 통과했고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구본찬과 이승윤 역시 올림픽 첫 출전이었다. 구본찬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양궁부에 들어오면 매일 용돈을 1000원씩 주겠다”던 담임선생님의 말에 덜컥 활을 잡았다가 올림픽 무대 정상에까지 오르는 세계적인 궁사가 됐다. 장난감 조립을 좋아하는 등 손재주가 좋아 대표팀 내에서 ‘마스터 리’로 불리는 이승윤 역시 장인급 활 솜씨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도 함께 호흡을 맞춰 금메달을 땄던 세 선수는 모두 20대 초반이어서 한국 남자 양궁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미국 대표팀의 브래디 엘리슨(28)은 “오늘 한국 선수들의 경기력은 세계 신기록급이었다”며 “한국이 보여준 오늘 같은 경기를 앞으로 또 볼 수 있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미국 대표팀은 경기 후 한국 대표팀을 향해 큰절을 하는 듯한 자세로 경의를 표했다. AP통신 등은 “한국이 압도적인 경기력을 앞세워 무자비한 경기를 펼쳤다”고 평가했다.
리우 올림픽에서 사상 첫 전 종목(남녀 단체전 및 개인전) 석권에 도전하는 한국 양궁의 첫 단추를 잘 끼운 남자 대표팀 3명은 8일부터 시작하는 개인전에서는 서로 경쟁자로 나선다. 김우진은 “선의의 경쟁을 벌여 셋 중 누구라도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