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리우] ‘러시아 레피아’ 올림픽에까지 마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8월 16일 05시 45분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국제심판 40명 중 25명이 구소련·러시아계
오심·판정 시비로 퇴출 위기 겪고도 반성 無


석연찮은 판정이었다. 체급까지 올리며 2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노린 김현우(28·삼성생명)의 도전이 허무하게 끝났다. 패자부활전에서 값진 동메달을 얻었지만 안타깝기 그지없다.

14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카리오카 아레나 2관에서 벌어진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 16강전에 출전한 김현우가 종료 직전, 로만 블라소프(26·러시아)를 ‘가로들기’로 완전히 뒤로 넘겼을 때 관중석은 후끈 달아올랐다. 현장을 찾은 관중도, 전 세계 기자들도 당연히 김현우의 역전승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딱 한 곳이 달랐다. 심판이다. 2004년부터 국제심판으로 활동한 만츠 우베(52·독일) 주심과 유카나노프 바라하이(58·이스라엘) 판정관은 처음에도, 한국 벤치에서 요청한 영상 판독에서도 2점만을 부여하는 ‘배짱’을 보였다. 세계 최강자 김현우와 블라소프의 치열한 라이벌전을 지켜본 중국과 일본 등 타국 선수단도 외마디 탄식을 터트렸다. 그들이 펼쳐 든 손가락 4개는 ‘4점이 맞다’는 의미였다.

애지중지하던 제자의 탈락을 ‘막지 못한’ 레슬링대표팀 그레코로만형 안한봉(48) 감독은 매트 위에 털썩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흔들며 절규했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심판들에게 “와이(Why)”를 외치는 장면에 늦은 밤 TV 중계를 지켜본 국민들이 함께 울었다. 안 감독은 “완연한 오심이다. 힘의 논리에서 우리가 피해를 봤다”며 세계레슬링연맹(UWW)을 성토했다.

UWW 내부와 국제기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안 감독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네나드 라로비치 회장은 세르비아인이지만, 실무를 맡은 부회장단 6명 중 2명(미카일 마미아쉬빌리·나탈리아 야리구이나)이 러시아 국적이다. 나머지 4명 중 아크롤드얀 루지예프(우즈베키스탄)만 유일한 아시아인이다. 다른 3명은 터키, 프랑스, 미국 출신이다. 국제심판 40명 중 절반 이상(25명)이 구소련 또는 러시아계다. 안 감독은 “힘이 있다고 어떻게 지는 경기도 뒤집을 수 있느냐”며 울분을 토로했다. 그러나 끝내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당초 판정에 불복해 제소 여부를 한참 고민했던 대한체육회와 대한민국 선수단이 이를 포기한 것도 나머지 출전자들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이날 한국의 항의에 심판위원장은 “블라소프의 반칙 3개를 심판이 포착하지 못했다. 매끄럽지 않은 운영이었다. 2점을 부여한 판정은 심판 재량이라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약소국의 설움’을 김현우가 고스란히 입증한 것이다.

레슬링은 2012년 런던대회 직후인 2013년 올림픽 퇴출 위기를 맞았다. 경기가 너무 늘어져 재미가 없는 데다, 오심과 판정시비도 많다는 것이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판단이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국제레슬링계는 기존 2분·3회전에서 3분·2회전으로 경기방식에 변화를 주고, 국제연맹의 명칭도 기존 FILA에서 UWW로 바꾸는 등 개혁을 선언했으나 제자리걸음이었다.

더욱이 국제레슬링계의 실세인 러시아는 국가 차원의 금지약물 파동을 겪었으나, UWW는 의심스러운 러시아선수 대부분의 리우올림픽 출전을 허용해 빈축을 샀다. 블라소프는 도핑이 적발되진 않았지만, 러시아 자체 선발전에서 탈락했음에도 러시아레슬링협회 차원에서 ‘우수선수’란 이유로 특별 구제해 리우로 향할 수 있었다. 블라소프가 조기 탈락하는 것은 러시아 입장에선 아주 불편한 ‘그림’이었다. 결국 블라소프가 시상대 꼭대기에 섰다.

한국레슬링도 반성할 부분이 적지 않다. 리우올림픽에선 피해자가 됐지만, 오래 전부터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로 지탄을 받아왔다. 국내대회에서도 국제무대 못지않은 오심이 잦다. 집안단속도 못하는데, 외부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국제대회에서 불합리한 판정을 당해도 그뿐이다. 안팎으로 싹 ‘바꿔야’ 할 레슬링이다.

리우데자네이루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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