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리우] ‘죄송 바이러스’에 걸린 태극전사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8월 18일 05시 45분


4강에서 탈락한 배트민턴 여자복식 정경은-신승찬 조.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4강에서 탈락한 배트민턴 여자복식 정경은-신승찬 조.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믿었던 종목들 줄줄이 탈락 울상
선수·지도자들 “죄송하다” 연발
“10-10은 무리” 자조적 목소리도


“정말 죄송합니다.” “이것 참 송구스럽습니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출전 중인 대한민국 선수단에서 요즘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사격황제’ 진종오(37·kt)가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5위)한 직후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하며 남긴 “죄송하다”는 말이 선수단 전체로 전염된 모양새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부진한 성적 때문이다. 선수단 분위기가 침체돼있는 것은 사실이다. 최소 1차례 이상 금빛 낭보를 전해주리라 기대한, 크게 ‘믿었던’ 종목들이 줄줄이 조기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있다.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내건 ‘금메달 10개 이상-종합순위 10위 이내’의 목표를 “지금이라도 낮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적 이야기들이 대회 중반을 넘어서면서 부쩍 늘었다.

한때 금빛 희망에 가득 찬 우리 젊은이들로 북적였던 올림픽 선수촌도 고개를 푹 숙인 채 귀국길에 오르는 선수단이 속속 나오면서 빈 방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을씨년스럽다”는 선수단 누군가의 표현이 거짓이 아니다.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을 휩쓸며 금메달 4개를 독식한 양궁, 금메달 1개씩을 따낸 사격과 펜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종목들이 자존심을 구겼다. 조별리그를 당당히 1위로 통과한 뒤 8강에서 좌절한 남자축구도 아팠지만, 세계 최강자들이 즐비해 자신감이 넘쳤던 유도와 배드민턴의 몰락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꾸준히 강세를 보여온 레슬링 그레코로만형마저 사실상 무너졌다. 출전자 3명 중 김현우(28·삼성생명)가 동메달을 얻는 데 그쳤다. 레슬링 자유형이 19일(한국시간)부터 시작되지만,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또 여자핸드볼과 여자하키가 일찌감치 조별예선 탈락의 쓴맛을 본 가운데,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여자배구도 16일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해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이제 17일 시작된 태권도를 제외하면 금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은 종목은 없어 보인다. 개인전만 진행하는 여자골프도 마냥 장밋빛으로만 바라볼 순 없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22·연세대)도 현실적으로 금·은메달과는 거리가 있다. 당연히 선수단에도 비상이 걸렸다. 대회 초반 선수단 관계자와 우연히 마주칠 때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기도록 함께 뛰어달라”는 메시지를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성적이 안 좋아) 죄송하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잦다. 선수도, 지도자도, 대한체육회 담당자들도 전부 머리를 숙이기 바쁘다. 리우올림픽 현장의 취재진과 중계진의 발걸음도 천근만근 무겁다. 막판 금빛 물결이 몹시도 간절한 ‘스포츠 코리아’다.

리우데자네이루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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