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을 걸어주겠노라며 제자들과 함께 뒹군 4년 매트 위에선 독사였지만, 매트 아래선 푸근한 큰형님. 힘겨워 하는 제자들에게 산삼과 차를 손수 달여주고 배고픈 대표팀을 위해 거액의 스폰서를 끌어온 큰 손.
리우에선 제자 김현우의 오심에 억울해서 울고 기대했던 류한수의 좌절에 안타까워 또 울고. 허망한 4년의 세월에 하염없이 눈물 흘렸지만 괜찮다고, 잘했다고 어깨 다독이던 큰 스승.
한국레슬링의 간판 김현우(28·삼성생명)는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뽑혔다. 그러나 2012년 런던대회 금메달리스트인 그를 기다린 것은 아쉬움이었다. 15일(한국시간) 카리오카 아레나 2관에서 벌어진 그레코로만형 75kg급 경기에서 김현우는 동메달에 그쳤다. 오심 논란 속에서도 값진 성과를 냈지만, 만족감과 포만감을 주지는 못했다. 같은 날 그레코로만형 59kg급의 이정백(30·삼성생명)은 1회전에서 탈락했다.
66kg급의 류한수(28·삼성생명)는 레슬링 그레코로만형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2013세계선수권대회와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잇달아 정상을 밟은 그의 인생 8할은 ‘기다림’이었다. 국가대표 2진으로 훈련 파트너 생활만 9년을 했다. 1진과 똑같이 매트를 뒹굴지만, ‘1진의 컨디션과 감각을 유지시키는’ 역할이 주 임무였다.
기다림 끝에 기회가 왔다. 김현우가 75kg급으로 체급을 올린 뒤 류한수는 최강자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2위로 리우올림픽 출전권을 직접 따낸 류한수는 국내선발전 탈락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결국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렇게 찾아온 생애 첫 올림픽. 세계랭킹 3위의 류한수는 큰 대회 징크스를 의식해 수염도 깎지 않고 17일 카리오카 아레나 매트에 올랐다. 그에게 올림픽 우승은 곧 ‘그랜드 슬램’을 의미했다. 출발은 좋았다. 16강전에서 타마스 로린츠(헝가리)를 꺾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8강전에서 미그란 아루튜난(아르메니아)에게 1-2로 졌다.
패자부활 1차전을 통과했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류한수는 라술 추나예프(아제르바이잔)에게 경기 시작 2분여 만에 내준 파테르 상황에서 옆굴리기를 계속 허용하며 0-8로 무너졌다. 그라운드 방어에 유독 약한 단점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 “메달을 꼭 가져왔어야 했는데, 모든 분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레슬링대표팀 그레코로만형 안한봉(48) 감독은 또 울었다. 이틀 전 김현우의 너무도 억울한 패배에 “내가 힘이 없어 미안하다”고 외치며 무릎을 꿇은 채 대성통곡한 안 감독은 류한수의 처참한 패배를 바라보며 가슴을 쳤다. 김현우 사태 때 지나치게 항의했다는 이유로 퇴장을 당했던 안 감독은 아시아레슬링연맹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매트 옆 세컨드 박스(벤치)에 다시 앉게 됐지만 패배까지 막지는 못했다.
누구보다 지극 정성으로 이번 리우올림픽을 준비한 터였다. 태릉선수촌에서 죽기 직전의 고통을 주는 ‘사점 훈련’으로 제자들의 체력과 기술, 정신력을 끌어올렸지만 매트에서 내려온 뒤에는 가장 따뜻한 ‘큰 형’이었다. 직접 차를 달여 사제가 한 잔 나누며 ‘아름다운 올림픽’을 그렸다.
허술한 행정과 지원에 항상 춥고 배고팠던 레슬링대표팀에 수억 원짜리 스폰서를 직접 끌어온 것도 안 감독이었다. 리우 입성에 앞서 미국 콜로라도에서 진행한 1800m 고지대 훈련부터 한국에서 자신이 토종꿀에 절인 산삼을 공수해 매일 한 뿌리씩 선수들에게 나눠 먹였다. 혹시나 ‘좋은 기운’을 빼앗길까봐 그도, 그의 ‘20년 지기’ 박장순(48) 자유형 감독도 그저 입맛만 다실 뿐 한 번도 산삼을 입에 대지 못했다고 한다.
리우 현장을 찾은 레슬링인들은 “(류)한수도, 안 감독도 정말 많이 애를 쓰고 노력했는데 결실을 맺지 못해 안타깝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리우의 ‘잠 못 드는 밤’은 깊어만 갔다.
안한봉 감독
▲생년월일=1968년 10월 15일 ▲출신교=광일고∼한국체대 ▲수상 내역=1992바르셀로나올림픽 그레코로만형 57kg급 금메달 ▲지도자 경력=삼성생명 감독(2004년∼ ),2004아테네·2008베이징·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레슬링대표팀 그레코로만형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