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왼손은 아직도 따봉이네요”…고통 이겨낸 박인비의 다음 목표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9일 16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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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따봉(엄지를 치켜세운 손 모양)’을 엄청 많이 했는데 한국에 와서도 제 왼손은 따봉이네요.”

29일 서울 더K호텔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회견장에 나타난 ‘골프 여제’ 박인비(28)의 왼손에는 두툼한 깁스가 씌워져 있었다. 엄지가 세워진 채로 고정된 손은 무척 불편해보였지만 박인비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부상의 고통을 이겨낸 왼손에는 새로운 목표에 대한 강한 의지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의 영광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1월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를 잇는 인대가 늘어난 박인비는 부상을 안고 리우 올림픽에 출전해 116년 만에 여자 골프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최근 병원을 찾은 박인비는 인대 재생을 위해 3주간 깁스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에 따라 다음달 열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 출전은 포기했다.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대회와 올림픽 우승)’을 달성한 그는 에비앙 챔피언십까지 제패하면 5대 메이저대회를 휩쓰는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박인비는 “올해 남은 대회 중에 가장 나가고 싶었던 대회였지만 나중을 위해 불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인비가 강행군대신 휴식과 재활을 택한 이유는 올림픽 이후의 목표를 더 많은 메이저대회 승수를 쌓는 것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메이저 대회 통산 7승을 기록 중인 박인비는 “부상을 겪으면서 더는 몸을 혹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모습으로 경기를 하려면 출전 대회 수를 줄이고 메이저 대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여자 골프 메이저 최다승은 패티 버그(미국)가 보유한 15승이다.

박인비에게 왼손 깁스는 영광의 상처이기도 하다. 그는 “경기에 집중할 때는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경기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오면 통증이 느껴졌다. 진통제를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참았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 통증이 재발할지 몰라서 (올림픽 출전을) 결정하기 쉽지 않았지만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면 내 골프 인생을 포기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용기를 내 도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자신의 금메달 획득이 골프 대중화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타냈다. 그는 “최근 가족들과 강원도 여행을 갔는데 골프를 잘 모르시는 할머니들께서도 ‘금메달 딴 것을 봤다’면서 축하해주셨다. 골프 팬이 많아지고 젊은 친구들이 알아봐줘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박세리 프로에게 영감을 받은 내가 올림픽 정상에 섰듯이 많은 친구들이 나를 통해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3억6000만 원에 달하는 금메달 포상금도 후진 양성 등을 위해 사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내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포상금을 어떻게 좋은 일에 사용할까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올림픽 금메달로 일각에서 제기됐던 은퇴설도 잠재웠다. 그는 “아직도 골프를 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은퇴 시기는 나도 알 수 없다. 2세 출산 계획을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갖게 된다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은퇴를 결정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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