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난달 열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따봉’의 나라 브라질에 대한 관심을 높여줬다. 덩달아 ‘브라질리안 주짓수(Brazilian jiu-jitsu·브라질 유술)’의 인기도 높아졌다. 주짓수는 크게 브라질리안 주짓수와 유럽식 주짓수로 나뉜다. 브라질리안 주짓수는 타격을 금지하고 관절 꺾기, 조르기 등의 기술을 주로 구사한다. 올림픽 열기가 한창이던 지난달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주짓수 체육관에서 직접 주짓수를 체험해 봤다. 리우데자네이루는 1925년 세계 최초로 브라질리안 주짓수 체육관이 문을 연 도시다.
몸무게만 100kg이 넘는 기자가 폼 잡는다고 도복을 입고 명상에 잠겨 있으니 동양의 무술 고수가 ‘도장 깨기(유명한 무술 도장을 찾아가 그곳의 강자를 꺾는 행위)’라도 하러 온 줄 알았나 보다. 그런데 하고 많은 동양 나라 중에 하필 왜 일본일까?
브라질리안 주짓수는 일본 고유의 무술인 유술(柔術)에서 유래됐다. 실전 대결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던 일본 유술가 마에다 미쓰요(1878∼1941)가 브라질의 항구 도시 벨렝에 정착해 기술을 전수한 것이 지금의 주짓수로 발전했다. 주짓수(Jiu-Jitsu)라는 이름도 유술의 일본식 발음인 ‘주주쓰’에서 나온 것이다.
세르지뉴 엔리키 미란다 관장(39)은 “당신을 일본에서 온 주짓수 고수로 생각한 모양”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기자가 빌려 입은 도복의 띠가 고수만이 매는 ‘레드&블랙’에 흰 줄 3개가 새겨진 것이어서 더욱 그랬나 보다. 주짓수 띠는 흰색, 회색, 노란색, 주황색, 녹색, 파란색, 보라색, 갈색, 검은색, 빨간색&검은색으로 나뉘며 이후에는 3년에 흰 줄 하나씩을 추가해 경력을 나타낸다. 띠만 보면 기자는 못 해도 20년 이상을 한 고수였던 것이다.
‘아차차∼. 저놈이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하면 어쩌지?’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Master!”에서 “Hey, 캉(kang)!”으로
그동안 본 무협지가 몇 권인가. 서로 인사를 나눌 때까지도 기자는 ‘동양에서 온 신비로운 고수’처럼 행세했다. 하지만 준비운동을 하면서 기자를 보는 눈빛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꺾기 기술을 많이 사용하는 주짓수 특성상 준비운동은 관절을 푸는 데 집중됐다. 바닥에 누운 뒤 무릎을 접어 양발을 바닥에 붙이고, 양측 옆구리를 번갈아 접었다. 준비운동만 했는데 땀은 비 오듯 흘러내렸다.
수업은 세르지뉴 관장이 부관장을 상대로 각종 기술을 보여주면 수강생들이 각자 정해진 훈련 파트너와 기술을 연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관장이 보여준 기술은 바닥에 누워 서 있는 상대를 공략하는 ‘스탠딩-가드’였다. 양 선수의 자세에 따라 스탠딩-스탠딩(둘 다 서 있는 경우), 스탠딩-가드, 가드-가드(둘 다 엉덩이나 등을 바닥에 댄 경우)로 구분된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세르지뉴 관장이 상대의 양 소매 깃을 잡았다. 그리고 왼쪽 발뒤꿈치를 상대의 오른쪽 무릎 뒤축에 댄 뒤 잡아당겨 순식간에 스윕(바닥에 있는 사람이 상대방을 바닥으로 눕히며 일어나는 기술)에 성공했다. 관장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캉(kang)” 하고 기자와 한 남자를 불렀다. ‘캉’은 기자의 성이다. 올 것이 온 것이었다.
기자, 리우에 잠들다(?)
기자가 파트너와 함께 연습한 기술은 간단한 조르기였다. 바닥에 누워 있는 상대를 가슴으로 눌러 압박한 뒤 몸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서 상대의 목을 조르는 것이었다. 먼저 조르기 기술을 시도했지만 생각대로 쉽게 구사되지 않았다. 기술을 걸 생각에만 집중하다 보니 압박이 느슨해졌고, 그 틈을 타 상대는 자세를 풀고 달아나 버렸다. 팔에 신경을 쓰니 이번에는 상대의 다리가 풀렸다.
지켜보던 세르지뉴 관장이 “무릎이 아닌 발끝을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상대의 몸을 위에서 누른 상태에서 발끝이 아닌 무릎을 바닥에 댄 채 이동을 하는 바람에 도망갈 틈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관장의 원포인트 레슨은 즉시 효과를 냈다. 바닥에 엎드려 무게 중심을 낮춘 채 발끝으로 이동하니 제대로 목을 조를 수 있었다. 상대는 이내 “컥컥” 소리를 내며 졌다는 의미로 바닥을 두드렸다. ‘오호∼, 이 맛에 격투기를 하나?’
관장의 공수 교대 지시에 따라 이번에는 긴장된 표정으로 바닥에 누웠다. 관장은 “못 견디겠으면 항복의 의미로 바닥을 두드리면 된다”고 말했다. 그 말에 덜컥 겁이 났다.
공격을 당할 때 느낌은 공격을 할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가슴을 짓누르는 상대의 몸무게는 승용차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뱀처럼 들어온 상대의 목 조르기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직 다 못 쓴 기사,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본 브라질 아가씨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 내가 이렇게 가는구나…. 아직 고백도 못 했는데….’
훈련 파트너인 루카스 비에이라 안요스(22·요리사)는 “온몸이 서로 맞붙은 채로 대결하는 것이 주짓수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살을 빼기 위해 주짓수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는 “내 몸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껴 10년도 넘게 주짓수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몸으로 두는 체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국내에서 브라질리안 주짓수를 배우거나 해 본 사람은 1만 명 정도인 것으로 주짓수 동호인들은 추산한다. 최근에는 종합격투기 선수들 외에 유명 연예인들도 브라질리안 주짓수를 배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짓수의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기술 구사다. △테이크다운(상대를 바닥에 넘어뜨리는 기술) △스윕(누워 있는 사람이 상대를 눕히며 일어나는 기술) △서브 미션(상대의 관절을 꺾거나 목을 졸라 항복을 받아내는 기술) △이스케이프(상대에게 깔린 상태에서 방어하고 탈출하는 기술)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상대의 자세와 상황에 따른 다양한 응용 기술들이 있다.
‘누구나 쉽게 배우는 주짓수 입문’을 쓴 한진우 런주짓수 관장(41)은 “몸으로 체스를 두듯 상대의 기술에 따라 다양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브라질리안 주짓수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체격이 좋고 힘이 세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기술에 따라 다양한 변화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머리가 좋아야 잘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일까. 최근에는 여성과 초중학생들도 체육관을 찾는다고 한다. 아예 이들을 위한 수업을 따로 마련할 정도라고.
장순호 사단법인 대한민국주짓수협회장은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여성이 남성의 힘을 당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남성의 손목 힘이 강해도 여성의 허벅지 힘보다 셀 수는 없다”며 “여성이 허벅지를 활용해 손목 꺾기를 제대로 하면 성인 남자라도 버텨낼 수 없다. 적은 힘으로 센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주짓수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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