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진 “안씻고도 다녔는데, 나도 모르게 예쁘게 보이려 애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0일 03시 00분


[리우의 웃음, 그 이후]올림픽 양궁 2관왕 장혜진

1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장혜진은 “나는 어릴 때부터 활을 잘 쏘던 선수가 아니어서 늦게 빛을 봤다. 그러다 보니 조금 잘 쏘는 날이 있어도 절대로 자만하지 않았다. 자만하지 않고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운동을 해 온 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1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장혜진은 “나는 어릴 때부터 활을 잘 쏘던 선수가 아니어서 늦게 빛을 봤다. 그러다 보니 조금 잘 쏘는 날이 있어도 절대로 자만하지 않았다. 자만하지 않고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운동을 해 온 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예전엔 안 씻고도 밖에 막 나다니고 그랬는데 이젠 못 그래요. 귀찮아도 입술에 립스틱 정도는 바르고 나가죠. 호호호.”

 1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장혜진(29)은 “올림픽 이후에는 나도 모르게 예쁘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말, 행동 하나하나가 다 신경이 쓰여요”라며 웃었다.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양궁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을 차지한 뒤 장혜진은 스타가 됐다. 알아보는 사람도 늘었고, 식당에서는 주문하지 않은 메뉴를 서비스로 줄 때도 많다.

 여기저기 찾는 곳도 많아졌다. 2관왕도 2관왕이지만 4년 전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탈락의 아픔을 이겨 낸 성공 스토리가 장혜진을 더 돋보이게 했다. 런던 올림픽 때 3명을 뽑는 여자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4위를 해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던 장혜진은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3위로 턱걸이를 해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뤘다. 강연을 해 달라는 대학과 홍보대사를 맡아 달라는 정부기관이 있는가 하면 군부대 페스티벌 개막식에 참석해 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지난달 ‘2016 대한민국 여성 체육대상’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윤곡여성체육대상을 받는 등 상복도 터졌다.

 장혜진은 올림픽이 끝난 뒤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을 만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다 보니 이러다 운동은 언제 하나 싶은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장혜진은 올림픽 뒤 출전한 3차례 국내 대회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뒀다. 9월 전국종합선수권에서는 4위를 했고, 10월 열린 전국체육대회와 ‘현대자동차 정몽구배 한국양궁대회’에서는 8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국내 대회가 원래 그래요. 제가 아무리 올림픽 2관왕이라도 조금만 훈련을 소홀히 하면 바로 티가 납니다. 그래서 다들 한국 양궁이 무섭다고 하는 거죠.”

 그래도 장혜진은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언제 또 오겠나’ 하는 생각으로 올림픽 이후의 시간을 즐겼다고 했다. “감독님께서도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고 실컷 즐기라고 하셨어요. 이런 날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랬다. 즐기는 건 한때였다. 장혜진은 12일 다시 서울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내년 3월에 열리는 국가대표 3차 선발전에 대비한 훈련을 위해서다. “오전 6시부터 7시까지 아침 운동한 뒤 식사하고 8시 반부터 낮 12시까지 오전 훈련, 점심 먹고 오후 1시 반부터 6시까지 오후 훈련, 저녁 먹고 7시 반부터 또 개인 훈련…. 올림픽 이전으로 다시 돌아간 거죠.” 리우 올림픽 남녀 대표팀 각 3명을 포함한 2016년 국가대표(남녀 각 8명)는 올해 9, 11월에 열린 1, 2차 대표 선발전을 통과한 남녀 선수 8명씩과 벌이는 3차 선발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2017년에도 태극마크를 달 수 있다.

 프로 팀이 없는 아마추어 선수로 올림픽에서 2관왕을 차지했으면 대성공한 인생이다. 그런 장혜진에게 더 높은 목표가 남아 있을까? “올림픽에서 2관왕을 했으니 기대 이상의 목표를 이룬 셈이죠. 그래서 앞으로는 즐기는 마음으로 운동을 하고 싶긴 한데 올림픽 후 국내 대회 때 막상 사선에 서 보니 또 이기고 싶고 그게 마음처럼 잘되지 않더라고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다 그럴 것 같아요.”

 리우 올림픽에서 전 종목을 석권한 한국 양궁이 못 이룬 게 있다면 딱 하나, 올림픽 개인전 2연패다. ‘4년 뒤 도쿄 올림픽에서 개인전 2연패를 목표로 삼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장혜진은 손사래를 쳤다. “그건 너무 멀리 있는 일이에요. 당장 국가대표 3차 선발전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지금 저한테 제일 중요한 건 내년에도 계속 국가대표 자격을 유지하는 거예요. 그래야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도 나갈 수 있고요.”

 다음 달이면 장혜진은 서른이 된다. 결혼을 생각할 나이다. “저도 요즘 그게 고민이 돼요. 도쿄 올림픽을 마치면 서른셋이 되는데 그 전에 결혼을 해야 할지, 아니면 그때까지는 운동에만 전념해야 할지….” 그런데 옆에서 인터뷰를 지켜보던 아버지 장병일 씨는 “요즘 여성 나이 서른셋이면 늦은 것도 아니다. 천천히 가도 된다. 고민할 것 없다”라고 했다. “진짜? 그래도 될까… 그럼 그렇게 할까요? 호호호.”

이종석 wing@donga.com·임보미 기자  
#장혜진#리우올림픽#양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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