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1위 美 데이비스 후반에 강해… 500m 최강 모, 600m까진 1초 앞서
차이 1.2초로 벌리면 2관왕 충분해
‘흑색 탄환’ 샤니 데이비스(32·미국)는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평가받는 스타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남자 1000m에서 흑인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고,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는 사상 최초로 이 종목 2연패를 일궜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주관하는 월드컵 대회 개인 종목에서 딴 금메달만 무려 53개다.
그런 데이비스가 경기장에서 만날 때마다 꼭 말을 붙이는 선수가 있다. 밴쿠버 올림픽 남자 500m 금메달리스트인 모태범(25·대한항공)이다.
데이비스는 모태범과 같이 빙상에 설 때면 “헤이, 태범.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도 500m는 네게 줄 테니까 1000m는 나한테 양보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모태범은 이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한다고 한다. “No(싫어).”
4년 전 밴쿠버 올림픽에서 데이비스가 10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바로 옆 은메달 시상대에 올라선 선수는 다름 아닌 모태범이었다.
○ 1000m에 다걸기
기록상으로 보면 모태범이 올림픽에서 남자 500m를 2연패할 가능성이 크다. 2013∼2014시즌 남자 500m 월드컵 랭킹에서 모태범은 527점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와 3위는 미헐 뮐더르(네덜란드·458점)와 나가시마 게이이치로(일본·414점)다. 올림픽 남자 500m에서는 두 차례 레이스를 합산해 순위를 정하는데 꾸준함에 있어 모태범을 따라갈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남자 1000m는 여전히 ‘데이비스 천하’다. 데이비스는 월드컵 1∼3차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370점으로 압도적인 랭킹 1위를 질주하고 있다. 모태범의 월드컵 랭킹은 4위(173점)다.
하지만 모태범은 입만 열면 1000m에서 우승하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15일 만난 그에게 “왜 그렇게 1000m에서 우승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사람 욕심이 끝이 없는 것 같다. 지난 올림픽에서 500m 금메달을 따봤으니 이번에는 1000m에서 일을 내 보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무적인 것은 지난해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에서 모태범이 처음으로 데이비스를 꺾었다는 것이다. 모태범은 그 대회에서 1분09초50으로 골인해 데이비스를 0.09초 차로 앞섰다. 김관규 대한빙상경기연맹 전무는 “개인적으로는 500m보다 1000m에서 모태범의 금메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0.2초에 메달 색깔이 바뀐다
비록 한 번이었지만 모태범이 데이비스를 꺾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1000m 금메달을 목표로 하는 모태범은 1000m에 모든 초점을 맞춰 훈련을 해 왔다. 좀더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체중을 작년 여름에 비해 4kg이나 줄였다. 그 대신 체력 운동의 강도는 높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온몸이 근육질이다.
관건은 레이스 중반까지 얼마나 데이비스를 압도할 수 있느냐다. 500m에 강점을 가진 모태범은 초반 600m까지는 데이비스보다 빠른 레이스를 한다. 경마로 따지면 추입마 스타일의 데이비스는 후반 레이스가 특기다. 대개 600m까지 모태범은 데이비스보다 1초가량 빠르다. 김 전무는 “만약 태범이가 600m 지점을 통과할 때 데이비스와의 격차를 1.2초로 벌릴 수 있다면 금메달은 모태범의 차지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모태범의 후반 지구력이 몰라보게 좋아졌기에 제아무리 후반 레이스가 좋은 데이비스라 할지라도 남은 400m에서 1.2초 차를 뒤집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모태범은 후반 지구력 강화를 위해 장거리 간판이자 절친한 친구인 이승훈(26·대한항공)과 꾸준히 장거리 훈련도 병행하고 있다.
이날 모태범은 “올림픽에서 정말 잘 탄다면 대회 후 자동차 광고를 찍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과연 1000m 금메달이 자동차 광고 모델의 열쇠가 될 수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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