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전 캐나다-美 꺾고 초대 챔프… 밴쿠버 피겨 노 골드 충격 씻어내
종합순위 1994년 1위 이후 내리막… 자국 개최대회서 명예회복 노려
러시아 국기가 물결처럼 넘실거렸다.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의 95%는 러시아 국민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홈 팬들의 함성은 빙판에 균열이라도 일으킬 듯했다. 피겨스케이팅 단체전이 열린 10일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였다. 이날 러시아는 이번 올림픽에 처음 채택된 이 종목에서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랭킹 포인트에서 75점을 얻어 우승 후보로 꼽힌 캐나다(65점)를 제쳤다. 동메달은 미국(60점)에 돌아갔다.
러시아는 이번 대회 첫 금메달을 그동안 실추된 겨울 스포츠 왕국의 면모를 되찾는 신호탄이라며 반겼다. 그 중심에는 단체전 정상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피겨스케이팅이 있다. 러시아 피겨스케이팅은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노 골드’에 그쳤다. 러시아가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못 딴 것은 소비에트연방 시절이던 1960년 이후 50년 만이어서 충격은 컸다. 피겨스케이팅의 몰락은 러시아 겨울 스포츠의 추락을 대변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대표팀을 지도했던 타마라 모스키나 코치는 “단체전 금메달의 의미는 개인전보다 더 중요하다. 러시아의 오랜 전통 종목인 피겨스케이팅의 부활을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러시아 피겨스케이팅은 소비에트연방 붕괴 후 훈련기금 고갈, 우수 지도자 해외 유출 등으로 침체기를 겪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지속적인 투자와 홈 이점을 앞세워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에서도 강세를 떨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는 이미 화려한 개막식을 통해 ‘러시아의 꿈’ ‘강대국의 부활’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했다. 이번 대회는 러시아가 처음으로 개최하는 겨울올림픽이다. 러시아는 소비에트연방 시절인 1980년 모스크바 여름올림픽을 개최했다. 하지만 이 대회는 미국 등 서방 세계의 대거 불참으로 ‘반쪽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20년 전만 해도 러시아(소비에트연방 및 독립국가연합 포함)는 겨울스포츠의 ‘절대 강자’였다. 1956년 코르티나담페초(이탈리아) 대회에 처음 출전하자마자 종합 1위에 오른 소련은 1988년 캘거리 대회까지 9차례의 겨울올림픽에서 7차례나 종합 1위를 차지했다. 1991년 연방 해체 이후에도 1992년 알베르빌 대회 2위,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1위를 기록했던 러시아는 1998년 나가노 대회에서 처음으로 3위로 처진 뒤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는 종합 11위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최근 ‘구원으로 가는 길(Road to Redemption)’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러시아는 4년 전 밴쿠버에서 악몽을 겪었다. ‘총체적 붕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 러시아가 이제 소치에서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정부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 13만 달러(약 1억4000만 원)의 포상금을 걸었으며 은메달(7만6000달러), 동메달(5만2000달러)도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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