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막이 없는 화장실·문 열리지 않는 E/V… 걸러지지 않은 생생한 SNS 소식에 망신 푸틴 “마치 과거 냉전시대 떠올리게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항상 외치는 이야기가 있다. 정치와 스포츠는 엄격히 분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여전히 국제정치 논리는 스포츠에 큰 영향을 끼친다. 러시아 소치의 빙판과 설원을 누비는 전 세계 젊은 선수들의 땀과 열정 못지않게 경기장 밖에서의 이슈도 끊이질 않는다.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이 대표적이다. 2012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러시아와 굵직한 안건들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왔다. 전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임시 망명 허가와 이란 핵, 시리아 사태, 유럽 미사일 방어계획(MD) 등을 놓고 충돌이 계속됐다. 고조된 갈등으로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 회담이 취소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주요 외신들도 마찬가지다. 소치올림픽 개최 이전까지는 미흡한 준비와 테러 집단 입국 루머 등을 화제 삼으며 “소치올림픽이 제대로 열릴 수 있냐”고 의문을 제기하더니 개막 후에는 유기견 학살, 환경운동가 체포, 러시아의 반동성애자법 등 사회적인 이슈들까지 파헤치고 있다. 물론 푸틴 대통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최근 TV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소치올림픽을 향한 서방의 무차별적 비난은 마치 과거 냉전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러시아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회 취재를 위해 소치 현지에 취재진을 파견시킨 각국 언론들의 보도는 그나마 참을만 하다. 비교적 정제된 글과 사진, 영상들이 전달되고 있을 뿐 아니라 러시아가 언론 보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야기 역시 없다.
진짜 걱정은 따로 있다. 언론이라는 공식 루트가 아닌 비공식 루트를 통한 거의 걸러지지 않은 생생한 경험담과 목격담이다. 참가국 선수들과 취재진은 각자의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활용해 숨기고픈 소식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한다. 숙소의 녹슨 수도관을 통해 흘러나온 벌건 녹물, 변기 2개가 설치된 칸막이 없는 화장실, ‘낚시 금지’ 그림이 그려진 화장실 입구, 열리지 않는 엘리베이터에서 문을 부수고 탈출한 사진 등이 전 세계로 퍼져 조롱거리가 됐다. 이런 현상을 놓고 소치에서는 ‘소셜림픽(소셜네트워크서비스+올림픽)’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아직 대회는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자신했던 러시아 당국은 이미 엄청난 망신을 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