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작 3시간 전, 전화벨이 울렸다. 국제전화였다. 반가운 장남의 목소리가 들렸다. 올림픽 경기를 앞두고 전화라니. 생전 없던
일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아들이 말했다. “엄마, 오늘도 또 떨려서 내 경기 안 볼 거야? 그러지 말고
오늘은 꼭 지켜봐 줘요. 이번엔 정말 마지막인데 엄마가 나랑 함께 해야지.”
이인숙 씨의 장남
이규혁(36·서울시청)은 12일(한국시간) 2014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현역선수로서 마지막 레이스를
펼쳤다. 기록은 1분10초04로 40명 중 21위. 늘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아쉬움에 잠 못 이뤘던 이규혁 가족이다. 그러나
이번엔 어머니도 웃고, 아들도 웃었다. 한국 최초의 6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기록이 메달보다 더 값진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들의 경기를 차마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던 어머니는 장남의 부탁대로 마지막 순간
TV 앞을 지켰다. “200m, 600m 구간까지는 기록이 아주 좋았잖아요. 그런데 역시 나이는 못 속이나봐. 마지막 400m에서
힘들어하는 게 확 보였어요. 본인도 ‘나이만 몇 살 어렸어도 메달권인데’ 하면서 같이 웃었지.” 그래도 어머니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마지막 순간 끝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확 기침이 터지더라고요. 정말 숨이 끝까지 차서 꽉
막혔을 때 그러거든요. 마지막까지 저렇게 최선을 다했구나 싶어서 뭉클했어요.”
결국 좌절을 안긴 6번의 올림픽.
그러나 돌이켜보면 모든 게 ‘행복’이다. 어머니는 말했다. “그래도 올림픽에서 메달 하나 못 따고도 이렇게 박수 받고 사랑 받는
선수가 어디 있겠어요. 우리 규혁이는 끝까지 복 받은 선수였어요. 정말 자랑스럽고, 기특해요. 내가 아들 하나는 잘 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