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메달 막내 아들에게 무슨 말 할까 고민 몇 번이나 고쳐 쓴 문자메시지로 격려 대신 승희 인터뷰서 먹고 싶다던 미역국 끓여놔 4년 뒤 평창선 승주·세영도 웃으리라 믿어
2014소치동계올림픽에서 여자쇼트트랙국가대표 박승희(22·화성시청)는 대한민국 선수단의 유일한 2관왕으로 빛을 발했다. 500m 결승에서 2차례나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나 완주하며 투혼의 동메달을 따낸 데 이어, 3000m 계주와 1000m에선 잇달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 전 밴쿠버올림픽 3000m 계주에서 1위로 골인하고도 억울한 실격 판정 탓에 금메달을 놓쳤던 아픔을 말끔히 씻어냈다. 이런 박승희가 2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했다. 쇼트트랙 동료들은 물론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등 메달리스트들과 함께였다. 돌아온 영웅들을 맞으러 나온 언론과 팬들로 공항은 난리법석이었다.
이 와중에 조용히 꽃다발을 들고, 한참 떨어진 곳에 한 아주머니가 홀로 서 있었다. 여자스피드스케이팅국가대표 박승주(24·단국대), 박승희, 남자쇼트트랙국가대표 박세영(21·단국대) 3남매의 어머니 이옥경(48) 씨였다.
● “승희보다 세영이부터 안아주고 싶어”
어머니는 “4년 전(승희가 밴쿠버에서 동메달 2개를 따고 돌아왔을 때)에도 먼발치에서나 봤다. 그래도 공항에 안 나올 수는 없더라”며 웃었다. 아버지와 가족이 총출동했는데, 인파에 떠밀려 아버지마저 어딘가로 잃어버렸지만(?) 이 씨는 이제나저제나 승희와 세영이가 언제 나올까만 신경 쓰는 눈치였다.
어머니는 쇼트트랙 경기를 TV 생중계로 못 봤다고 했다. 이제 면역이 될 법도 하건만, 떨려서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둘째딸이 최고의 성적을 냈지만, 노 메달로 돌아온 막내아들이 눈에 밟히는 것이 엄마의 심정인가보다. “공항에서 나오면 세영이부터 안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한국에서 어머니가 제일 고민한 것도 노 메달에 그친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였다. 아들의 노 메달이 확정된 날, 어머니는 몇 번이나 고쳐 쓴 끝에 문자메시지를 러시아 소치의 아들에게로 보냈다. “누나도 밴쿠버에서 힘든 시간이 있었다. 그 시련을 견뎌서 지금의 기쁨이 있잖니?”라고 4년 뒤를 당부하며 격려했다. 어머니는 “아직 아들에게 답장을 못 받았다”며 웃었다.
● “승희가 미역국 먹고 싶다는 기사 읽고 준비해놔”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금메달을 2개나 딴 딸을 향한 기특함도 잊지 않았다. 이 씨는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승희가 한국에 돌아가면 미역국을 먹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집에 미역국을 끓여놓고 왔다”며 웃었다. 박승주, 박승희, 박세영은 4년 후 평창에서 더욱 기대되는 나이다. 그것을 알기에 어머니는 희비가 엇갈린 성적표를 들고 온 맏딸과 막내아들을 모두 웃으며 맞을 수 있었다. 4년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둘째딸을 통해서 확신했기 때문이다.